[백록담]'세밑 온정'
입력 : 2013. 12. 18(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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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래알처럼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모든 사물의 그림자가 길게 느껴지는 12월, 어느 새 2013년 세밑이다. 세밑이면 누구나 덧없이 흐르는 '시간'을 떠올리면서도 이웃에 대한 온정은 관심밖의 일로 여기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온정의 손길은 세밑을 맞아 곳곳에서 이어져 추위를 녹이고 있다. 도내 금융권을 비롯한 사회 기관·단체 등 각계의 '김치 온정'은 유난하다 할 만큼 쇄도하고 있다. 제주농협이 최근 사랑의 김장김치 4000여 포기를 담아 저소득층 지원에 나선 것을 비롯해 사회 각계 각층에서도 '김치 온정'을 베풀었는가 하면 사랑의 연탄나눔행사, 성금 기탁, 재능기부 등을 통한 온정들도 답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김치 온정'은 올해 풍년을 맞은 배추 사주기 운동에 힘입어 예년보다 아주 풍부해져 일부에선 볼멘소리마저 들린다. 유독 김장김치만 들어오다 보니 생필품이나 난방지원 등은 줄어 "정성이 고맙지만 대략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제주시 한 복지관의 경우 최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후원물품이 이어지고 있지만 90% 이상이 김장김치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생활가전이나 난방비(煖房費) 등의 후원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제주시 다른 지역은 물론 서귀포시나 읍·면 지역도 비슷한 상황을 맞으면서 쓴웃음을 남기고 있다고 전해진다.
'세밑 온정'으로 보긴 어렵지만 한 60대 은퇴 공무원의 '아름다운 약속'은 세밑을 맞는 도민들에게 큰 위안으로 와 닿는다. 한때 교육공무원으로 일하다가 퇴직해 희곡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장일홍(63) 작가의 얘기가 퍼지면서 제주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귀감 사례로 꼽히고 있다.
장 작가는 자신과의 '작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아파트 2채와 부모님이 거주하던 건물과 토지 등 3억5000만원 상당의 유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평소 위대한 교육자로 평가받고 있는 페스탈로치의 묘비에 쓰인 글('모든 것을 주고 하나도 가져가지 않은 사람의 묘')을 항상 마음에 품고 다니는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라 여겨진다.
장 작가는 "육체나 재물은 하나님이 저에게 잠시 맡겨주신 것으로 저는 수탁자이고, 원주인인 하나님에게 반납해야 된다. 반납하는 결정적인 때가 죽음이다. 이때 육체는 시신기부로, 재산은 유산기부로 실행하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고 강조한다.
그의 선행은 제주에서 처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유산 기부, 아름다운 약속' 캠페인에 이름을 올렸고 전국적으로는 19번째 맞는다고 한다.
한평생 살며 더 늦기 전에 남에게 온정을 베푸는 일은 세상 어떤 일보다 아름다운 일이다. 온정을 베푸는 내용이 무엇이냐, 그 규모가 얼마냐는 그 다음 얘기가 아닐까 한다.
이즈음 '좁은 문'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지드의 얘기는 한층 진하게 와 닿는다. "늙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아름답게 새해를 맞을 것인지 지금부터 고민해 볼 일이다.
<김기현 경제부장>
그 중에서도 '김치 온정'은 올해 풍년을 맞은 배추 사주기 운동에 힘입어 예년보다 아주 풍부해져 일부에선 볼멘소리마저 들린다. 유독 김장김치만 들어오다 보니 생필품이나 난방지원 등은 줄어 "정성이 고맙지만 대략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제주시 한 복지관의 경우 최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후원물품이 이어지고 있지만 90% 이상이 김장김치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생활가전이나 난방비(煖房費) 등의 후원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제주시 다른 지역은 물론 서귀포시나 읍·면 지역도 비슷한 상황을 맞으면서 쓴웃음을 남기고 있다고 전해진다.
'세밑 온정'으로 보긴 어렵지만 한 60대 은퇴 공무원의 '아름다운 약속'은 세밑을 맞는 도민들에게 큰 위안으로 와 닿는다. 한때 교육공무원으로 일하다가 퇴직해 희곡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장일홍(63) 작가의 얘기가 퍼지면서 제주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귀감 사례로 꼽히고 있다.
장 작가는 자신과의 '작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아파트 2채와 부모님이 거주하던 건물과 토지 등 3억5000만원 상당의 유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평소 위대한 교육자로 평가받고 있는 페스탈로치의 묘비에 쓰인 글('모든 것을 주고 하나도 가져가지 않은 사람의 묘')을 항상 마음에 품고 다니는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라 여겨진다.
장 작가는 "육체나 재물은 하나님이 저에게 잠시 맡겨주신 것으로 저는 수탁자이고, 원주인인 하나님에게 반납해야 된다. 반납하는 결정적인 때가 죽음이다. 이때 육체는 시신기부로, 재산은 유산기부로 실행하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고 강조한다.
그의 선행은 제주에서 처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유산 기부, 아름다운 약속' 캠페인에 이름을 올렸고 전국적으로는 19번째 맞는다고 한다.
한평생 살며 더 늦기 전에 남에게 온정을 베푸는 일은 세상 어떤 일보다 아름다운 일이다. 온정을 베푸는 내용이 무엇이냐, 그 규모가 얼마냐는 그 다음 얘기가 아닐까 한다.
이즈음 '좁은 문'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지드의 얘기는 한층 진하게 와 닿는다. "늙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아름답게 새해를 맞을 것인지 지금부터 고민해 볼 일이다.
<김기현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