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수학여행
입력 : 2014. 04. 23(수) 00:00
"예천 사설 대창학원 직원 다섯명과 생도 일백팔십이명은 5월 5일 청년회원 이십오명과 함께 안동군 하회에 수학여행하고 다음 날 무사히 귀착했다." 동아일보 1922년 5월 17일자 4면에 실린 기사다.

1930년대엔 백화점들이 수학여행 코스 가운데 하나였다. 갓 문을 연 경성 미스코시(三越)백화점과 화신백화점은 수학여행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미스코시백화점은 유럽풍의 건축물에 엘리베이터 등을 갖추며 금세 필수 코스로 자리잡았다.

'수학여행(修學旅行)'이란 실제 경험을 통해 지식을 넓힐 수 있도록 교사의 인솔 아래 행하는 여행을 일컫는다. 문화·경제·산업 등의 주요 현장을 직접 견학함으로써 교과 외의 분야에 대해 배우고, 넓은 식견과 풍부한 정서를 육성할 목적에서 이뤄진다. 학교 밖에서의 집단적 행동을 통해 건강·안전·집단생활의 수칙이나 공중도덕 등을 배울 수도 있다. 수학여행을 일본식 교육의 잔재라 여기는 이들이 적잖다.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 이후인 1907년을 전후해 수학여행이 등장했다. 하지만 지금의 시각으로는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었다. 학생들을 집체교육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반론 또한 만만찮다. 신라의 화랑들은 수시로 명산대천을 찾아 심신을 갈고 닦았다. 18~19세기 영국 귀족들은 자기 아들을 외국으로 보내 1~2년 동안 여행을 하도록 했다. 바로 '유럽대륙 순회 여행(Grand Tour)'이다. 가정교사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어학실력을 기르고 해당 지역의 문화를 배웠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지 일주일을 넘어서고 있다. 이 배에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 등이 함께 타고 있었다. 승선했던 학생 가운데 250명 가량은 아직까지도 생사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올해 1학기 동안 전국 초·중·고등학교의 수학여행이 전면 중지된다. '세월호 참사' 여파다. 교육부는 며칠 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교육국장 회의를 열고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와 함께 선박 및 항공편을 이용한 수학여행이나 현장체험학습에 대비해 보강된 매뉴얼을 학교 현장에 보급키로 했다.

수학여행 존폐를 놓고 찬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안전사고가 잇따를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만족도 또한 높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3년간 수행여행 중 발생한 안전사고는 570여 건에 달한다. 최근들어 빈도가 잦아지면서 사고도 대형화되는 추세다. 학생·교사들의 만족도가 극히 낮다는 조사 결과도 이어진다.

반면 수학여행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단체 활동을 통해 소속·유대감을 키울 수 있을 뿐더러 협동정신을 배울 수 있는 극히 드문 기회라고 주장한다. 학업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배려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란 현실적 이유도 나온다. 수학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 달라는 중·고등학생들의 호소도 이어지고 있다.

섣부른 폐지는 어른들의 잘못을 청소년들에게 떠넘기는 격이 될 수 있다. 안전사고의 위험을 줄이면서도 효과적인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동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수학여행도 괜찮다. 타지방 일부 학교에서는 얼마 전부터 이같은 즐거운 실험을 통해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 내고 있다. <현영종 사회문화부장>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091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ϴ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