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공감의 시대를 살고 있나
입력 : 2014. 04. 30(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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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배우, 의사.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소설가는 글을 써나가는 동안 작중 인물이 되어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다. 배우는 극중 인물의 인생을 살아간다.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환자가 되어보는' 능력의 유무는 뛰어난 임상의와 그렇지 않은 의사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이들은 다른 대상의 내부로 들어가 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을 한다. 공감(empathy)이라는 생각 도구를 통해서다.
그들만 그런가. 이미 오래전에 아동발달 전문가들은 태어난 지 하루 이틀된 아기들도 다른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같이 따라 운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것을 초보적인 수준의 공감적 고통으로 봤다. 아기가 따라 우는 이유는 공감하는 성향이 우리의 생물학적 구조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후 18개월에서 2년반 정도가 지나면 공감의 확장을 의식하게 된다. 이때쯤이면 아이들은 자신과 남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다른 아이가 겪는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기가 자신과 다른 존재로 남을 인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기가 두 살 정도 되면 다른 아이가 고통받고 있는 광경을 보았을 때 덩달아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가 장난감을 건네거나 자기 엄마에게 데려가서 달래주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10년 국내에 번역 소개된 제러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는 300여개의 참고문헌과 1000개가 넘는 주(註)를 동원해 인간이 근본적으로 공감하는 종(種)이라는 논거를 제시하려 애쓴 책이다. 지은이는 인류의 공감적 특성이 진화해온 과정을 좇으며 공존을 위한 변화를 주문했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지 보름이 되었다. 파도 위에 머리를 내민 배가 끝내 가라앉는 걸 생방송으로 지켜보면서도 물밑에 갇힌 어린 생명들을 구하지 못한 채 늘어가는 사망자 숫자만 헤아리고 있다. 대통령 사과와 총리 사퇴로 마무리될 일인가 싶다.
한국 사회의 맨얼굴과 마주하게 만든 이번 참사는 공감의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무너뜨린다. 엊그제 공개된 침몰사고 초기 구조 동영상은 '나만 살겠다'고 승객을 팽개친 선박직 선원들의 행적을 낱낱이 보여줬다. 실종자 가족들의 눈높이에서 공감해야 할 인사들은 위기 대응 능력의 부재를 드러낸 것도 모자라 경쟁하듯 '인증샷'에서 '황제 라면'까지 대중의 분노를 일으키는데 앞장섰다. 애끓는 현장에 감정이입 못하고 권위를 앞세운 종래의 격식과 절차에 매몰된 탓일 게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공감 의식은 실천하고 단련하지 않으면 확장될 수 없다고 했다.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사람과 감정적으로 같은 지평 위에 있지 않으면 진정한 공감은 불가능하다. 신분이 상대방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느끼고 그래서 다르고 낯설다고 생각하면, 그들의 기쁨이나 슬픔을 자신의 것처럼 실감하기 어렵다. 우린 지금 공감의 시대를 살고 있나. <진선희 사회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