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63)구좌읍 한동리
입력 : 2024. 05. 03(금) 00:00수정 : 2024. 05. 03(금) 06:21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둔지오름에서 조간대까지 힐링 자산의 보물창고
[한라일보] 으뜸 농어촌마을의 포부를 부지런함으로 일궈나가는 한동(漢東). 한라산 동쪽에서 대표적인 마을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옛 이름은 '괴리'라고 불렀다. 마을이 바뀐 사연은 독특한 전설을 내포하고 있다. 내용은 이러하다. 마을에 원인 모를 화재가 수없이 발생하자 여러 가지 궁리를 하다가 마을 이름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논의한 끝에 한동리라고 마을 이름을 바꿔 부르기 시작하면서 그러한 원인 모를 화재가 사라졌다는 전설이다. 마을 어르신들 중에는 전설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다.

서쪽은 행원리, 동쪽은 평대리, 남쪽은 송당리와 덕천리에 접해 있다. 일주도로변 마을회관을 기점으로 둔지오름 쪽은 웃동네(상동), 행원리 쪽 바닷가 마을은 서동, 바로 맞은편은 새왓동네(양선동), 동쪽 바닷가 지역은 평대리 서동과 경계를 이루는 계룡동이 모여서 평대리를 이루고 있다. 물겅거리, 왕숫돌거리, 배엄술, 췟대우영, 뒷머레, 수덱이, 청벵질, 황쥐돌렝이, 둘렁머리, 가리벵듸, 둔지비켝, 케새왓, 괴시리머세 등 한동리 출신이라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고유지명들이다. 길 이름이 참으로 아름다운 마을이다.

둔지오름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내려와 바다를 만나는 마을. 둔지오름 대부분이 마을 소유 땅이다. 말굽형 오름으로 분류되는 이 오름은 특이하게도 터진 용암이 바다를 향하여 흐른 것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둔지오름 남쪽 지형은 화산 활동에서 오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풍수지리를 언급하시는 마을 어르신들은 계혈(鷄穴)이라 하여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으로 표현한다. 그 둔지오름의 정기가 흘러내려 한동리 사람들의 세상사를 온전하게 품어주기를 염원하는 마음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둔지오름에 올라 보니 시각적 확신이 생겨난다. 길들은 바닷가 방향으로 향해 있다. 그 길들은 둔지오름과 바닷가를 이어주며 그 사이에 한동리를 먹여살려온 밭들이 추상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길을 따라 걸어보면 어떤 묘한 치유의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나지막한 동산들이며 평화로운 굴곡의 아름다움은 농업경관이 얼마나 뛰어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 지, 그 가능성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남아있는 농촌풍광의 옛 정취를 맛보려거든 둔지오름에서 바닷가 방향으로 난 길을 걸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때 묻지 않은 그 무엇을 느끼며.

설촌의 역사는 650년 정도로 보고 있었다. 환해장성의 흔적은 유서 깊은 마을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모래와 해안가에 검은 암반지대가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모습이 경이롭다. 나그네의 눈에는 낭만적인 그림이지만 치열한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지금도 실질적으로 바다에 들어가 물질을 하는 해녀들이 수 십명이라고 하니 한동리 해녀들의 강인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그러한 어머니들의 생활력이 교육열로 승화되어 한 집 걸러 교육자들이 한 명씩이라는 명성을 얻어내게 된 것이리라.

지질 자원을 포함한 다양한 자연자원을 바탕으로 더 나은 내일을 열어나가는 과정에서 한동리의 역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마주하고 있는 부용림 이장에게 한동리라고 마을공동체가 보유한 가장 큰 강점이요 장점을 물었다. 옹골찬 대답이 나왔다. "하늘도 막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유가 본질이었다. "예로부터 내려온 속담에 부지런 부자는 하늘도 막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우리 마을 주민들을 이르는 것입니다." 입증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경지면적의 차이는 별로 나지 않지만 구좌읍 열 두 마을 중에 농산물 계통출하량이 으뜸이라는 것. 치열한 성실성을 자산으로 서로 돕고 격려하며 단합하여 살아가고 있음을 제주 속담을 빌어서 자긍심으로 삼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농산물 품종도 다양하여 콩, 마늘, 당근, 감자, 쪽파 등 한동리라고 하는 '부지런 브랜드'를 가지고 승부 근성을 발휘하고 있는 자신감이라고나 할까. <시각예술가>



거슨물 아침풍경
<수채화 79cm×35cm>


밀물과 썰물, 그 조간대의 변화가 너무도 아름다운 해변이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며 훑어보면 어떤 특이함도 찾을 수 없는 섬 제주의 보통 바닷가. 시간성을 부여하여 자세하게 바라보면 이 바닷가보다 역동적인 밀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없다. 바다는 밀물과 썰물로 숨을 쉰다. 섬을 만나서 쉬는 숨은 더욱 박력이 넘친다. 그 내밀한 호흡을 그리려 하였다.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한 날, 그것도 사리 때를 기다려 그린 것이다. 화면의 가장 멀리 있는 암반까지 물이 빠지면 검은 해안선으로 보이다가 해안도로 방벽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밀물 시기에 육안으로도 차츰차츰 차오르는 수면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신비하게 펼쳐진 검은 바위들 때문이다. 5분 전에 보이던 부분이 사라지는 경이로운 변화들. 용천수로 생활하던 시기에 저 어업용 도로는 없었을 것이다. 밤에 썰물이었다가 아침 6시 정도부터 밀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8시가 넘은 시각 상황이다. 동녘에 해는 뽀얀 아침 안개에 휩싸여 은은한 밝은 빛을 바다에 뿌리고 결국 저 길마저 잠기게 된다.

그 사이에 가장 절묘한 추상적 구도를 잡아서 그렸다. 빛과 물과 돌이 만나서 물그림자를 연출하는 이 놀라운 시간그리기는 한동리 바닷가 아니면 잡아낼 수 없는 비경이다. 마치 다도해 섬들처럼 펼쳐진 검은 바위들의 밑은 바다에 박혀있다. 밤에 물에 잠겨 있다가 썰물 때 잠시 마르더니 다시 밀물에 잠기는 길, 수채화로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물로 그리는 그림이니까.



웃동네 가는 길에
<수채화 79cm×35cm>


구름 사이로 햇살이 잠시 연극조명처럼 슬레이트 지붕을 비췄다. 언덕길 배경으로 나무들이 연초록 봄순을 뿜어내는 시기에 그리기로 약속하였으니 지켜야 했기에 기쁜 마음으로 그렸다. 4차선 도로가 많은 교통량을 소화하는 길가에 이처럼 소박한 풍광을 보유한 곳이 있으랴. 구도는 너무도 파격적이다. 오르막길이 마치 동양화의 여백처럼 느껴지는 놀라움.

이유가 있다. 의도된 결과는 지붕 두 개의 대비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 근경 왼쪽의 지붕과 언덕길 눈높이 시점 때문에 가려진 오른쪽 상단 웃동네 지붕을 풍경화가 지닌 원근 속에서 함께 그려낼 방법은 이런 파격 이외에는 찾을 수가 없었다. 옅은 담채 분위기로 봄의 대기를 그리려 하였다. 나무들의 오밀조밀한 공간감과 시원스러운 길이 밀한법을 연상시킬 정도로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화면 중심에서 조금 비켜나간 전봇대가 양팔저울의 중심처럼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시멘트와 아스콘이 만나는 무작위 인도와 차도 경계선. 그 흐름이 오르고 내리는 흐름에 정겨움을 더한다. 집담과 밭담이 농촌마을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세월의 쌓임이다. 아니, 세월을 쌓은 것이다. 한동리의 역사를 써 내려간 역사서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길을 걸어 올라가면 둔지오름에 이른다. 빛으로 노래하는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나무와 지붕, 그리고 오르막길이 보여주고 있다. 수 십 년 전의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고자 하는 저 집주인의 의지와 사연이 궁금하고 존경스러워 그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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