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백록담] 구태와의 결별
입력 : 2024. 05. 13(월) 00:00수정 : 2024. 05. 14(화) 12:02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한라일보] 드라마 '미생'에서 오상식은 고교 동창의 비상식적인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동창이 다니는 회사와 계약하기 위해 술 접대 요구 등 갖은 굴욕을 견뎠지만 돌아온 건 계약 실패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상식의 모습은 측은하기 그지없다. 굽은 등, 흔들리는 발걸음과 눈동자에서 그가 처한 각박한 삶을 읽는다.

미생은 이런 직장인의 애환을 잘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나는 불편한 감정을 감출 수 없다. 드라마는 뒷거래나 다름없는 술 접대 문화 등 구태를 끊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마치 그것이 직장인의 숙명인냥 묘사했다. 직장인이라면 이정도 구태쯤은 감내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드라마에서 뭘 그런 것까지 기대하느냐고 타박하는 이도 있을듯 하다. 맞는 말이다. 구태와 결별하는 건 현실에서도 어렵다. 하지만 과거 식당, 버스에서 흡연하던 문화가 지금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비상식이된 것처럼 온 사회가 작동하면 못 끊어낼 것도 아니다. 구태와 결별하려는 구성원 전체의 의지와 노력, 그것이 중요하다.

최근 오영훈 지사와 국회의원 당선인의 간담회를 놓고 공직 사회가 시끄러웠다. 제주도는 간담회를 30분 여 앞두고 당선인 환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며 업무 중인 공직자들에게 로비로 모여 박수를 쳐달라고 요청했다. 로비로 집결한 공무원 100여명은 당선인이 도청에 들어설 때마다 우뢰와 같이 박수를 보냈고, 오 지사는 그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웃었다. 간담회 후 "공무원 정치적 중립 의무에 어긋났다" "근무시간에 왜 공무원을 동원하느냐" 등 비판이 제기됐지만 오 지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주민 복리 증진을 위해 공무원은 봉사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며 도정과의 협력 관계를 위해 헌법상 공무원 의무를 적극 해석해야 한다고 맞섰다.

납득하기 어렵다. 백번 양보해 공무원들의 당선인 환대가 헌법상 의무라고 해도, 그게 본연의 업무보다 더 시급한 일이라고 말 할 순 없다.

정말 헌법상 공무원 의무이고, 본연의 업무를 제쳐둘 만큼 시급한 일이라면 도지사가 떳떳하게 지시를 하면 될 일이지 왜 요청이니, 자발적 참석이니 사족을 붙인단 말인가. 논리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다.

편협한 시각도 드러냈다. 공무원이 적극 해석 해야할 조문으로 꼽은 헌법 7조 1항의 '공무원 봉사 의무' 바로 밑 7조 2항에는 '정치적 중립성'이 버젓이 적시돼 있다. 공무원이 적극 해석해야 할 헌법 조문이 7조 1항 뿐이란 말인가.

헌법 해석을 떠나 가장 실망스러운 건 당선인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서라면 박수 부대를 동원해도 상관 없다는 식의 구태스런 발상이다. 국회와 도정 사이 협력 관계라는 게 박수 소리, 동원된 공무원 수와 비례해 돈독해지는 것도 아닐텐데 업무 중인 공무원을 불러 모았다. 하물며 국희의원이 환대를 받으면 뭐하나 더 주고, 그렇지 않으면 뺏는 그런 자리인가. MZ세대 공무원이 사직을 결심하는 이유 중 하나가 구태로 꼽히는 경직된 조직 문화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다시 말하지만 구태와의 결별은 사회 전 구성원의 노력 없이는 힘들다. 그리고 그 변화를 사회 지도층에서부터 이끌어 내야함은 두말할 나위 없음이다. 물론 오 지사도 예외는 아니다. <이상민 행정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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