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 11. 07(금) 03:00수정 : 2025. 11. 07(금) 08:59
2025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억새와 수크령이 지천인 목장길수려한 경관 품은 동검은이오름수산 곶자왈이 숨겨놓은 생명수
[한라일보] 연휴 내내 찌뿌둥하던 하늘이 환하게 열린 주말. 쾌청한 초가을 날씨를 만끽하며 길을 나섰다. 지난 11일 진행된 '2025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는 옛적 '테우리'가 다니던 길을 따라 초지와 오름, 곶자왈 지대를 누비는 시간이었다. 빈자리 하나 없이 꽉 찬 버스가 어느새 구좌읍 하도 목장에 닿았다.
푸릇푸릇한 잎들이 가득한 당근밭과 무밭을 지나자 곧 너른 목장 지대가 펼쳐졌다. 하도리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종잣돈으로 마련한 마을공동목장이다. 과거엔 이곳에 소떼와 말들을 풀어놓고 키웠었지만 대규모 축사 위주로 사육 환경이 바뀌면서 지금은 옛 풍경이 됐다.
"소나 말처럼 가축들을 방목해 키우는 목자(牧者)들을 제주에서는 테우리라고 불렀어요. 목축업이 쇠퇴하면서 거의 사라져 버렸지만 테우리가 있던 마을에서는 아직도 음력 7월마다 우마번성을 기원하던 백중제(百中祭)를 지내기도 하죠." 안내를 맡은 오영삼 자연환경해설사는 테우리란 단어가 몽골에서 유래됐으며 소를 칠 때 꾸지뽕나무 줄기를 이용했다는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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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는 제주자연생태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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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검은이오름에서 바라본 풍경. |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들녘엔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억새와 수크령이 지천이다. 목장 언덕을 올라 숨을 크게 내쉬어본다. 탁 트인 경관에 가슴속이 다 시원해진다. 늠름하게 서 있는 다랑쉬오름과 편편하게 다져진 아끈다랑쉬오름, 손지오름, 용눈이오름 그 너머로 아스라이 보이는 성산일출봉과 우도까지. 아마 소떼를 몰던 테우리들도 풍경에 취해 잠시 쉬어갔을 것이다. 그는 생각이나 했을까. 이 안에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 보물이 있었다는 것을. 2007년에 한라산과 거문오름계 용암동굴, 성산일출봉이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에 등재되면서 제주도는 세계인이 찾는 보물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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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 곶자왈이 품은 생명수인 진남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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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랑지오름 편백나무 숲. |
하도 목장과 이어진 동검은이오름은 빼어난 경치로 이름난 오름이다. 산체가 높이 솟아올라 있는 만큼 언덕에서 바라봤을 때보다 시야도 더 넓어졌다. 발아래 움푹 파인 분화구가 화산섬 제주를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동검은이오름은 여러 차례 분화하면서 형성된 복합형 화산체입니다. 이처럼 옆구리가 터져버린 듯한 분화구를 말발굽형이라고 해요." 해설이 이어지자 아득히 먼 시간 속 장면이 오버랩돼 보인다. "여기서 흘러내린 용암이 수산 곶자왈 지형을 만들었죠. 이 오름이 모체인 셈이에요." 덧붙인 설명에 곧 이어질 곶자왈 탐방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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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색고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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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고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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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리삼 |
곶자왈공유화재단에서 매입해 관리하고 있는 수산 곶자왈은 평소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다. 곶자왈 지대를 보호하기 위한 차원으로 이번 탐방을 위해 특별히 개방해 줬다. 사람 발길이 거의 닿지 않다 보니 숲 속은 천연 원시림이나 다름없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무성하게 자란 나무 아래 고사리를 비롯한 양치식물들이 숲을 뒤덮고 있다. 이끼가 잔뜩 낀 바위투성이 환경 속에서도 굳건히 뿌리를 내린 나무들. 강인한 생명력 앞에서 마음이 한없이 겸허해진다. 울퉁불퉁한 돌무더기 길을 걷느라 걸음이 느려지기는 했지만 자연을 늘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걷는 내내 곶자왈 숲이 뿜어내는 맑은 공기가 폐부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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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탱자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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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홍술잔버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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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대 |
숲은 귀한 생명수도 품고 있다. 용암대지에 형성된 진남못은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습지형 못이다. 해안에서 솟아나는 물을 용천수라 부르듯 산간 지역에서는 빗물을 모은 물을 봉천수라 불렀다고. 옛적 물이 귀했을 때는 못 둘레에 돌담을 쌓아 물통을 만들어 사람도 마시고, 가축들을 먹이기도 했다. 테우리들도 이곳에서 목을 축이고 몰고 온 소들을 풀어놓았을 터이다. 다만 이런 습지들이 점점 육상화 돼 사라지고 있다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곶자왈 숲을 거쳐 월랑지오름을 오르는 길에선 편백나무들이 반겨줬다. 비탈진 기슭을 내려서니 좁쌀만 한 꽃을 피워낸 고마리들이 하늘거리며 남은 걸음을 응원해 줬다. 어른 키를 훌쩍 넘은 억새밭을 헤쳐 나오자 목초를 베어 낸 들녘이 나타났다. 거대한 마시멜로처럼 보이는 사일리지가 듬성듬성 놓인 모습이 이국적이다. 과거 몽골이 지배하던 시기에 설치됐다는 탐라 목장은 당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장소다. 목장 한편에 오래된 잣성이 남아 있는데 이때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긴 세월 들풀이 묻혀 보일락 말락 하지만 마치 잊혀 있던 옛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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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주 여행작가 |
탐방을 마친 후 잠시 제주자연생태공원에 들렀다. 다치거나 야생성을 잃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을 보호하는 곳이다. 육지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겨온 반달가슴곰과 날개를 다친 독수리와의 만남이 깊은 여운을 남겼다.
<글·사진 정은주(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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