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12) 골체오름 입구~골체오름 정상~민오름~우진제비오름~우진제비 둘레길~선녀와 나무꾼~흐린내 생태공원출렁이는 길 따라
입력 : 2025. 12. 19(금) 03:00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깊어가는 계절, 은빛 억새
계단길이 설치된 우진제비오름.
주민들 일상과 맞닿은 자연의 길
우진샘, 가뭄에도 흐르던 생명수
소중한 식물 찾으며 되살아난 동심




[한라일보] 따사로운 가을볕이 내리쬐는 주말 아침. 청명한 하늘을 만끽하며 가벼운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2025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열두 번째 탐방은 완연한 가을 속으로 떠나는 여정이었다. 길잡이를 맡은 고성두 자연환경해설사를 따라 골체오름으로 향했다.

'골체'는 제주에서 농사일에 쓰던 전통 농기구다. 화산이 폭발할 때 형성된 U자 형태로 벌어진 분화구가 골체를 닮았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제주 사람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는 오름이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가벼운 마음으로 올랐다. 입구에 줄지어 선 벚나무와 울긋불긋 물든 나무들이 늦가을 정취를 더하고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매 걸음마다 따라왔다.

걷는 도중에 청미래덩굴 열매가 보였다. "여기 보시면 가시가 매의 발톱처럼 구부러져 있어 매발톱가시라고도 하죠. 지역에 따라 종가시나무, 망개나무, 명감나무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뿌리를 약재로 쓰기도 하는데 이럴 땐 토복령이라고 해요." 같은 식물을 두고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흥미로웠다. 둥글고 넓적하게 생긴 잎은 천연 방부제 역할도 한다. 옛적에 떡이 상하지 않게 잎을 따다 둘둘 말아 쌌다고 하는데 경북 의령군 향토 음식인 '망개떡'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민오름 정상에 오르면 파노라마 경관이 펼쳐진다.
민둥산에서 울창한 숲이 된 민오름.
우진제비오름 우진샘 아래 사람들이 모여 있다.


골체오름을 내려와 민오름으로 향하는 길에는 억새의 향연이 펼쳐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을 햇살을 머금은 들녘이 은빛으로 일렁거리고, 강아지 솜털마냥 보송거리는 억새꽃들이 반짝이며 춤을 췄다. 제주에는 민오름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여러 곳이 있다. 예전에는 민둥산처럼 보여 '민오름'이라 불렀다는데 우리가 오른 곳은 오름 전체가 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1960~70년대에 심은 나무들이 울창하게 숲을 이룬 것이다. "쑥대낭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삼나무가 쑥쑥 잘 자란다고 해서 붙은 제주 말입니다." 숲 안쪽으로 갈수록 삼나무뿐 아니라 소나무, 상수리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햇빛이 들지 않은 그늘진 숲이 서늘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제는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겠냐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숲으로 들어섰다.

민오름 식생을 설명하는 고성두 자연환경해설사.
편백나무 열매
까마중 열매
남오미자


민오름은 비탈진 경사면을 그대로 올라야 했다. 가파른 곳에서는 밧줄을 잡고 오르기도 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숨이 가빠지 즈음 정상에 도착했다. 다행히 힘들게 오른 보람이 있었다. 드넓은 들판 사이로 자리 잡은 마을과 그 너머로 펼쳐진 오름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봉긋하게 솟은 오름들이 겹겹이 산그림자를 이룬 경관도 이채로웠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우진제비오름으로 가는 길목에 작은 마을을 지나쳐갔다. 오래전 이 지역에 양잠단지를 조성하면서 생겨난 마을이다. 당시 군유지(국유지)를 분양받아 시작한 양잠사업은 오래가지 못하고 실패했지만 마을은 그대로 남았다. 비가 많고 습한 지역임에도 이날은 맑고 화창한 날씨 덕분에 쾌적하고 여유롭게 느껴졌다.

청미래 덩굴
우진제비오름도 민오름 못지않게 경사가 심했다. 하지만 탐방로에 돌계단을 놓아 비교적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다. 오름 중턱에 우진샘이 있다. 산간 지역에서 보기 힘든 귀한 용천수다. "옛날에 가뭄이 들어도 여기만큼은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해요. 이 마을뿐 아니라 이웃한 덕천 마을 사람들까지 이곳으로 물을 길어 왔습니다." 그 먼 거리를, 하물며 물허벅을 진 채 몇 시간씩 오가야 했을 고단함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지금도 샘에는 물은 졸졸 흐른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 제주 사람들의 생명줄이었던 물은 여전히 맑고 차가웠다.

마지막 코스인 흐린내 생태공원에 들어서자 가을빛이 더욱 짙어졌다. 공원 안쪽 넓은 암반 지대에 물이 고여 연못을 이룬 '빌레못'이 있다. 암반 표면에 난 크고 작은 틈들을 주변 토사가 메워 습지가 형성된 곳이다. 못 가장자리에는 움푹 파인 동굴도 보였다. 제주의 독특한 지질 구조가 만들어낸 자연의 작품들이다. 습지에는 멸종위기 식물인 전주물꼬리풀이 자라고 있다.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보라색 꽃을 피우는 희귀한 식물이다. 해설사는 우리에게 먼저 직접 찾아보라고 권했다. 모두가 보물찾기에 나선 아이들처럼 이리저리 흩어졌다. 천천히 걸으며 작은 풀들을 유심히 살폈다. 꽃이 지고 난 후라 눈에 쉽게 띄지 않았다. 찾고 보니 마른 이삭처럼 보이는 풀이었다. 이 작은 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늦가을 햇살을 맞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걷는 내내 따스한 기운이 감싸 안았던 하루였다. 오름과 숲과 물길을 따라 가을이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정은주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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