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명의 문화광장]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입력 : 2025. 12. 23(화) 01:00수정 : 2025. 12. 23(화) 06:18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한라일보] 지난 8월에 내한했던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게이츠가 추천한 책,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다시 꺼내 들었다. 2016년에 읽고, 거의 10년 만이다.

당시 읽을 때는 폭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작가의 말이 조금은 수긍됐고, 폭력에 대한 인격의 진화를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9년 전에 읽었던 그 감정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나는 세상이 점점 더 거칠어지고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뉴스를 켜면 세계 곳곳이 전쟁과 범죄, 혐오가 반복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는 실정이고 보니 우리의 일상이 폭력화된 사회 속에 노출됐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의 "인류의 폭력은 장기적으로 감소해 왔다"는 대목에서 작가가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을 놓쳐 변화하는 미래 역시 읽어내지 못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과거 공개 처형과 고문, 잦은 살인이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하며 잔혹했다는 것을 느꼈다. 이 대목에서 과거를 너무 쉽게 미화하고, 현재의 불안을 과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책에 온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는 없다. 오늘날의 폭력은 주먹보다 혐오의 언어로, 총보다 차별의 구조로 훨씬 진화해 사회 곳곳에 존재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잔혹한 살인과 폭력이 더 많이 부각돼 보도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폭력 혹은 직계가족 간의 폭력 이런 폭력은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사회를 오래 잠식하고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폭력이 줄어들었다'는 말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책의 중반부에서 다루는 인간 본성에 대한 설명은 매우 인상 깊었다. 핑커는 결코 인간이 착해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공감과 이성, 자기통제, 도덕 감각, 법과 제도라는 억제 장치가 사회적으로 강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은 인간을 이상적 존재로 형상화하지 않으면서도 변화의 가능성에는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방대한 분량의 책을 덮으며 나는 책임감을 느꼈다. 세상이 덜 폭력적으로 느껴지게 됐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선택 덕분이라는 뜻이며, 앞으로의 선택 역시 우리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희망의 책이기보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질문처럼 와닿는 도서였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꿈꾸고 있는지 스스로 강한 질문과 반문을 해봐야 한다. 폭력과 불안을 넘어 2025년을 빈틈없이 마무리하고 설렘을 가득 실은 2026년을 맞이하자! <장수명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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