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나해의 하루를 시작하며] 2026 제주 농업, 위기를 ‘르네상스’로
입력 : 2026. 01. 28(수) 02:00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한라일보] 제주 농업이 거대한 폭풍의 눈 속에 들어섰다. 한·미 FTA 로드맵에 따라 미국산 만다린 관세가 0%로 전환되며 무관세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수입량 급증과 기후 위기, 부채의 늪이라는 '삼중고'는 현장의 공포를 넘어 생존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

물론 우리 농민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농업 예산을 지속적으로 편성하고 지원하는 점에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치솟는 인건비와 기타 생산비를 감안해 보면 농가 소득이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현실이 있을 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예산 투입을 넘어 현장의 고통을 살피는 더욱 촘촘하고 정교한 정책적 배려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가장 뼈아픈 현실은 '기후의 배신'과 '시설 투자의 역설'이다. 만감류의 열과 피해는 일상이 됐고, 수입산에 맞서기 위해 단행한 시설 투자는 오히려 참혹한 부채를 남기고 말았다. 올해 FTA 기금 사업의 약 47%가 농가 자부담과 융자로 채워진 현실에서 고금리 이자는 농민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도정은 이제 개별 농가에 빚을 권하는 관성을 멈추고 정교한 생존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 프랑스식 '농업재해기금'을 도입해 기상 이변 손실을 재해로 인정해 소득을 보전하고, 네덜란드식 '공동 시설단지' 모델로 초기 투자비와 부채 부담을 원천 차단하는 실질적 금융 방패가 절실하다.

그럼에도 제주 농업은 다시 일어설 저력을 가지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제주의 상징인 '감귤'의 자존심 회복이다. 관세가 사라진 수입산에 맞서 제주는 '당일 수확, 당일 배송'의 초신선 가치로 승부해야 한다. 제주 화산토의 생명력은 감귤을 단순 과일 이상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격상시킬 것이다. 두 번째는 독보적 자산인 '월동 채소'의 경쟁력이다. 양배추, 무, 브로콜리 등 겨울철 육지 농산물이 얼어붙는 계절에 홀로 생명을 키워내는 제주의 월동 채소는 수입 농산물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내수 시장의 절대 강자다. 육지 농업이 멈춘 시기에 발휘되는 이 특수한 생산력이야말로 제주만이 가진 가장 강력한 키워드다.

마지막으로 농업과 관광의 결합을 통한 '관계 농업'의 실현이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에게 지역 푸드 시스템을 제공하고 농장을 치유의 공간으로 제안할 때, 농촌 고령화와 공동화 현상을 막는 숨구멍이 열릴 것이다.

2026년은 제주 농업의 골든타임이 끝나는 해가 아니라, 제주의 흙과 농심을 믿고 '제주형 농업 르네상스'를 시작하는 원년이 돼야 한다. 정부와 제주도는 이제 속 빈 홍보 대신 농민을 구할 금융 방패와 공정한 지원 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농민들의 땀방울이 헛되지 않도록 정부의 정교한 정책적 관심이 끝까지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0% 관세라는 숫자보다 뜨거운 것은 농민의 정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의 의지다. 제주의 생명 시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흐르고 있다. <고나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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