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우의 목요담론] 돌봄은 복지가 아니라 생존전략이다
입력 : 2026. 03. 05(목) 01:00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한라일보] 인간은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돌봄의 역사가 시작됐다. 골반 구조가 바뀌고, 뇌는 커졌다. 반면에 산도는 좁아져 출산은 어려워졌다. 결국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걷는 다른 포유류와는 달리 유난히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난 아이를 오랫동안 함께 돌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 취약성은 생존전략이었다. 부모만이 아니라 혈연을 넘어선 공동체의 협력이었다. 누군가는 먹을 것을 구하는 사이 누군가는 아이들을 돌봤으며 다른 이들은 위험을 살폈을 것이다. 아이를 함께 키우는 구조 속에서 인간은 언어를 발전시키고 지식을 축적하며 문명을 이뤘다.

돌봄은 아이에게만 향하지 않았다. 심각한 골절이나 장애를 겪고도 수년간 생존한 인류의 흔적도 있다. 공동체가 그들을 돌보았음을 의미한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노인은 단순한 비생산 인구가 아니었다. 계절의 흐름과 사냥 경로, 먹을 수 있는 식물과 독성 식물을 구분하는 지식의 저장소였다. 비록 직접 사냥이나 채집에 참여하지 않는 노인은 아이를 돌보고 지식을 전수함으로써 집단의 생존 확률을 높였다. 오늘 내가 강해도 내일은 다칠 수 있고, 오늘 젊어도 언젠가는 늙는다는 진실을 일찍부터 알았던 것이다. 돌봄은 연민이 아니라 미래 위험에 대비한 상호 의존이었다.

오늘날에도 돌봄은 한국 사회의 생존을 좌우할 수밖에 없다. 만 3~5세 자녀를 둔 30~40대 가구는 월평균 110만원 안팎의 양육비를 지출하고, 사교육비를 더하면 140만원을 넘는다. 월 소득 400만~500만원 가구라면 전체 소득의 20~30%를 아이에게 쓰고 있다. 50~60대 가구가 노인을 부양할 때 장기 요양에 따른 본인 부담만 월 50만~70만원 수준이다. 여기에다 사적 간병비를 포함하면 수백만원까지 증가한다. 아이와 노인 돌봄은 가계를 압박한다.

제주라는 섬은 이러한 사실을 오래전부터 터득해 왔다. 거센 바람과 깊은 물살 속에서 해녀는 홀로 물질하지 않았다. 불턱에서 몸을 녹이며 서로의 숨을 살피고, 연로한 해녀는 물에 들지 않아도 물때와 물의 흐름을 가르쳤다. 공동체는 젊은 노동력만으로 유지되지 않았다. 누군가를 버리는 선택은 결국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선택이기 때문이었다.

돌봄은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사회적 투자다. 가족이 집에서 혼자 감당하던 돌봄을 사회가 나누면, 돌보던 사람은 일터로 나갈 수 있다. 돌봄이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셈이다. 노인의 삶이 안정되면 응급실과 병원에 실려 가는 횟수가 줄고, 가족이 생계를 포기하는 일도 줄어든다. 돌봄은 지출이 아니다. 내일의 부담을 덜어내는 것이다.

섬은 서로 기대어 살아야 유지되는 공간이었다. 인류가 돌봄 덕분에 살아남았듯, 제주 역시 돌봄을 다시 공동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돌봄은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라 제주의 미래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 기반이기에. <송창우 제주와미래연구원장·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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