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68] 3부 오름-(127)장구목
입력 : 2026. 04. 07(화) 03:00
김찬수 hl@ihalla.com
능선의 흐름이 길게 늘어지면서 이어지는 산줄기
장고를 닮았다는 억지해석


[한라일보] 장구목은 한라산 윗세오름대피소 지경에서 서북벽 방향으로 보이는 능선이다. 그중 높은 곳의 봉우리를 장구목오름이라 부른다. 제주시 오라동 산107번지 일대다. 표고 1813m로서 자체높이는 70m에 불과하지만, 한라산 정상을 제외한 오름으로서는 가장 높다.

한라산 정상에 이르는 관음사 탐방로에서 바라본 장구목. 사진 김찬수
장구목이란 지명에 대해서 1996년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이란 책에는 한라산 주봉 북서쪽에 뻗은 산등의 이름으로, 안부(鞍部) 옆에서 본 모습이 '장구' 같다는 데서 연유한 이름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설명은 "장구목은 이 어깨 마루에서 북향으로 길쭉하게 뻗어 나온 산릉을 지칭하며, 남북단의 두 봉우리와 그 사이의 잘록한 안부로 형성된다. 동서측면은 깊은 계곡으로 내리지르는 급사면에다 부분적으로 바위 벼랑이 버팀벽처럼 받쳐져 있다. 이 전체적인 지형이 마치 장구 모양을 닮았다는 데서 장구목이라 불린다"라는 김종철의 '오름나그네'에 나오는 구절을 그대로 받은 것이다.

이후 여러 저자들이 그대로 이어받았다. 예를 들면 어느 저자는 장고목 혹은 장구목이란 장구의 목과 같이 장구의 잘록한 부분이라는 데서 붙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옛 지도에 나오는 장고항(長鼓項)의 장고(長鼓)는 장고의 음독자 표기로 오늘날의 장구(악기)를 말하는 것이고, 항(項)은 이 한자가 '목 항'자라면서 '목'을 표기하기 위해 동원한 훈독자 표기라 했다. 그 뜻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중요한 통로의 좁은 곳'이란 뜻으로 볼 수도 있고, '어떤 물건의 목에 해당하는 부분'이란 뜻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억지 해석이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형·지역에 붙는 이름을 자연지명이라고 한다. 문화유산, 교통시설, 공원 등 인간이 만든 인공구조물에 붙인 인위지명에 대응한다. 자연지명은 그곳에 연관을 맺고 살던 사람들이 그들 고유어로 부르던 것을 언어로 전승하다가 점차 문자로 표기하는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이런 고유어 지명을 근원지명이라고 하는데, 지명의 해독이란 이 근원지명은 무엇이며, 그 뜻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다.



전국에 산재하는 장구목


그렇다면 장구목을 한자 표기 이전 고유어로는 어떻게 불렀다는 것인가? 그리고 고대인들에게 장고라는 악기가 일반화되었었다는 것인가? 그리고 오늘날의 장고는 언제부터 이런 모양을 했다는 것인가? 이렇게 한자를 그대로 풀어서 지명의 유래라고 해 버리면 이 지명은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인이 한자를 동원해 작명했다는 점을 전제한다는 것 아닌가? 장고라는 악기 명칭은 11세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물론 삼국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악기가 있었지만 명칭은 '요고(腰鼓)' 또는 '세요고(細腰鼓)'라고 했다.

어쨌거나 장구목은 한자지명임에 분명하다. '장구'+'목'의 구조다. 지금은 '장고항(長鼓項)'이라 쓰고 '장구목'이라 읽는다. 지명어에서 '장구'의 '장'은 '長(장)', '獐(장)', '將(장)', '章(장)'으로 나타난다. '獐(장)'을 제외하고는 의미와는 무관하게 모두 이 글자와 음이 같은 한자를 택한 것이다. 섬진강 상류, 순창군 인계면 심초리 일대를 장군목(將軍木)이라 한다. 원래 주민들은 '장구목(長口木)'이라 불렀는데, 관광지 개발 과정에서 바뀌었다고 한다. 고유어로는 노리목이다. 대한제국 시기(1910년) 측량 지도에도 '장구목(長口木)' 표기가 확인된다.



왕관바위는 '큰 바위'


삼국사기 지리지에 장산(獐山郡)이 나온다. 장산은 느르뫼, 늘뫼 등으로 불렸던 곳이다. '노라 장'+'뫼 산'의 구조다. 한자의 본래 뜻은 '노라(노루)'지만 동물 노루를 쓰려고 한 게 아니라 '노라'라는 발음만을 취하려고 쓴 것이다. 그러므로 장산은 느르뫼를 표기하려고 쓴 한자 지명이다. 경기도 장단의 노루모기를 지칭한다. 장항구(獐項口)라는 지명도 나온다.

장항은 오늘날 노루목, 노루마기, 모루막이라 일컫는 지명이다. 산줄기가 길게 뻗은 곳 또는 막다른 산마루에 붙이는 이름이다. 장색현(獐塞縣)은 '노루 장'+'막힐 색'의 구조다. '색(塞)'이라는 글자는 훈음인 '막'을 표현하려고 동원됐다. 장구목이라 부르는 이 지명은 한자표기 이전에는 느르매기, 늘매기, 노르매기 등으로 불렸던 곳이다. '매기'라는 말은 이처럼 지형적 맥락에서 산의 흐름이 이어지는 부분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매기는 산줄기, 능선, 혹은 그 끝자락인 지역을 나타낸다. 전국에 장구목이란 지명은 네이버에서 검색되는 것만으로도 14개에 이른다. 이 지형들이 장구처럼 생긴 건 아니다.

한라산의 장구목은 지금은 흔히 장구의 목처럼 생긴 곳이라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자 표기 이전 고유어 명칭 즉 오늘날 한자로 장고항(長鼓項)이라고 표기한 지명의 근원지명은 느르매기, 노르매기 등으로 불렸을 것이다. 능선의 흐름이 길게 늘어지면서 이어지는 산줄기로 볼 수 있는 지형이기 때문이다. 오름의 지명은 여러 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지형적 특성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장구목 서쪽을 보면 왕관릉이 보인다. 이 왕관릉은 이 능선의 선단부에 왕관바위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왕관바위를 왕관처럼 생겨서 붙은 지명이라고 하는 설명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큰+바위+바위'란 뜻이다. 지명에서 '왕'은 '큰'을, '관'은 '바위'를 의미한다. 용눈이오름 편과 각수바위 편을 참조할 수 있다. 이 사이의 계곡은 제주시를 관통해 용연에 이르는 한천의 상류로서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이 계곡에 한 때 대피소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용진각'이었다. 아마 이 골짜기의 이름 '용진골'에서 따온 이름일 것이다. 크고 긴 골짜기란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01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주요기사더보기

실시간뉴스

많이 본 뉴스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