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71] 3부 오름-(130)둔지오름
입력 : 2026. 04. 28(화) 03:00수정 : 2026. 04. 28(화) 09:16
김찬수 hl@ihalla.com
개그콘서트 언어유희 코너 ‘꺾기도’를 보는 듯
관련 없는 두 어휘를 버무려


[한라일보] 둔지오름은 정상이 뾰족한 오름이다.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에 있다. 표고 282.2m, 자체높이 152m로 꽤 높은 편이다. "'둔지'는 제주방언으로 '평지보다 조금 높은 곳'을 가리키는 말로서, 마소가 많이 모여 떼를 이룬 것을 '둔짓다'라고 하는 말이 있다.

즉, 주변에 '둔지(용암암설류 등)'가 많은데 연유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제주의 오름에 나오는 설명이다.

돗오름(왼쪽)과 둔지오름(오른쪽), 평평하거나 볼록한 지형 특성이 대비가 된다. 달랑쉬오름에서 촬영. 사진=김찬수
"현평효에 따르면 제주어의 '둔지'는 '평지보다 조금 높은 곳'을 가리키는 말이며, 마소가 많이 모여 떼를 이룬다는 뜻인 '둔짓다'라는 말도 있다. 즉 '둔지'가 많은 지형인 데서 그 이름이 붙었을 것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오름 나그네에 나오는 설명이다. 현평효는 '둔짓다'라는 말을 위와 같이 풀이한 바 있지만 둔지가 평지보다 조금 높은 곳이라고 한 바는 확인되지 않는다. 현평효 선생은 저명한 언어학자로 제주대학교 총장을 지낸 분이다.

만약 '둔지'라는 말과 '둔짓다'라는 말이 위의 뜻으로 사용된다고 해서 이 둘을 버무려서 둔지오름이라는 지명을 주변에 '둔지(용암 암설류 등)가 많은데' 연유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한때 개그콘서트 '꺾기도'라는 언어유희 코너를 보는 듯하다 이 코너는 "반갑습니다람쥐", "안녕하십니까불이" 같은 말장난으로 웃긴다.

17세기 탐라도와 1709년 탐라지도병서를 비롯한 여러 고전에 '둔지악(屯止岳)', 1899년 제주군읍지에 '둔지악(屯池岳)', 1910년경 조선지지자료에 '둔지봉(屯池峰)', 일제 강점기 지도에 '둔지봉(屯地峰)'으로 나온다.



둔지오름은 유달리 위가 볼록해


"'둔지악(屯止岳)', '둔지악(屯池岳)', '둔지봉(屯地峰)' 표기들은 모두 '둔지오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인데, '둔지'는 평지보다 조금 높은 둔덕을 말한다. 이 오름의 분화구에 이류구들이 있어서 이러한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심재집'에서 '오름 안의 봉우리들이 기복함이 마치 둔진(屯陣)과 같다.'라고 해서 둔진이 '둔지오름'으로 됐다는 설도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설명이다.

달랑쉬오름(왼쪽)과 둔지오름(오른쪽), 둔지오름은 위가 유난히 볼록하다. 사진=김찬수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둔지'는 '평지보다 조금 높은 곳'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는 설명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김석익의 심재집에서 했다는 '둔진(屯陣)'과 같다고 한 설명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은 옳다고 볼 수 있지만 모두 잘못됐다고만 할 뿐 그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어쨌거나 '둔지'가 해결의 열쇠가 된다. 과연 '둔'이 '평지'보다 조금 높은 곳인가? 이런 해석은 한자의 뜻풀이를 염두에 뒀을 개연성이 있다. 즉 '둔(屯)'이라는 한자에 본래 '언덕'이라는 뜻이 있고, 군대가 진을 치고 지형지물로 이용했던 곳도 '언덕'이었으므로 이로부터 군대의 진을 친다는 뜻도 나왔다. '둔지오름'을 마땅히 설명하기 어려우므로 이렇게나마 해결해 보려는 시도에서 나왔을 것이다.

또 하나는 한자는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어휘들이 있기 때문이다. 중세어에 '두던'이 있다. 둔덕, 언덕을 지시한다. 혹은 오늘날 쓰이는 '둔덕'을 염두에 뒀을 수도 있다. 불룩하게 언덕이 진 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한자 '둔(屯)', 중세어 '두던', 현대어 '둔덕' 그 어느 쪽이든 그것은 어형의 유사성에 기댄 해석일 뿐 '둔지오름'의 '둔'과 직접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것은 이 오름 자체의 지형적 특성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오름이 있는 일대의 지형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오름에 대해서만은 그 자체의 특성을 반영한 지명이 아니라 이 오름이 있는 일대의 지형 특성을 반영해야 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둔지’와 둔덕은 무슨 관계?


‘둔지오름’이란 ‘둔지+오름’의 구조다. 이 ‘둔지’는 ‘볼록한’ 등을 지시하는 고대어 ‘토브-’에서 기원했을 것이다. 이 말은 중세 몽골어 ‘토우치’, 칼카어 ‘토우츠’ 등과 비교된다. 이렇게 격음화한 발음은 사실 표기상의 문제일 뿐 국어로 오면서 ‘도우지’ 혹은 ‘도우즈’로 실현된다. 이 오름의 특성은 봉우리가 ‘볼록’하다는 데 있다. 그것은 특히 인접한 돗오름과 선명히 대비된다.

돗오름은 ‘저악(猪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돼지의 중세어 ‘돝’에서 유래한다는 풀이를 볼 수 있다. 역시 글자 뜻에 얽매인 풀이다. 본 기획에서는 돗오름에 쓰인 ‘돗’이 돼지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중세국어에서 같은 발음 ‘돋’을 ‘돛’의 의미로 쓰기도 했다는 점을 들었다. 돗오름이란 (높게) 도드라진 오름이라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해독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해독은 성급했다. 이후의 전개과정에서 ‘윗부분이 평평한’이라는 뜻임이 밝혀졌다. 여기서 ‘도지’란 ‘ᄃᆞᆯ지’에서 기원했으며, ‘ᄃᆞᆯ’이란 ‘ᄃᆞ라미’, ‘ᄃᆞ래오름’ 등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위가 평평한’이란 뜻이다. ‘지’는 ‘마루’라는 뜻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므로 돗오름은 ‘위가 평평한 오름’의 의미다.

‘둔지’란 ‘볼록한’의 뜻이다. 그러므로 둔지오름은 ‘위가 볼록한 오름’이라는 뜻이다. ‘위가 평평한 오름’이라는 뜻의 돗오름과 대비가 되는 지명이다. 다만, 여기서 ‘위가 볼록한’의 고대어 ‘도우지’ 혹은 ‘도우즈’가 ‘둔지’로 축약되는 과정은 지명을 2 음절화하는 언어 습관 때문이다. 그리고 몽골어의 공통조어 ‘톱(토브-)’이 일본어로 분화하면서 나타나는 ‘b’음이 ‘m’음으로 바뀌는 음운 법칙처럼 제주어로 분화하는 과정에서도 똑같이 ‘b’음이 ‘m’으로 바뀌어 ‘톰’으로 변음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결국 ‘도우지’ 혹은 ‘도우즈’가 ‘둔지’로 변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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