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69] 3부 오름-(128) 성진이오름과 세성제오름
입력 : 2026. 04. 14(화) 03:00
김찬수 hl@ihalla.com
세성제오름을 삼형제오름이라 하는 건 과잉 해독
성진이, 위가 평평한 오름


[한라일보] 516도로를 따라 서귀포로 넘어가는 도중 제주마방목지를 관통하게 된다. 이 목장을 벗어날 즈음 왼쪽으로 정상에 여러 송신탑이 있는 오름을 보게 된다. 개오리오름이라고도 하고 견월악이라고도 하는 오름이다. 이 오름의 반대편 그러니까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나지막한 오름을 볼 수 있다. 성진이오름이다. 표고 700.5m, 자체높이 75m다. 산정부에 원형의 분화구가 있으며, 산체는 둥그스름하고 완만해 멀리서 보면 위가 길고 평평해 보인다.

정면에 나란히 있는 3개의 오름이 세성제오름이다. 맨 앞 오름에 보이는 팔각정이 1100도로 탐라각이다. 사진 김찬수
사람 이름같이 들리기도 하는 이 '성진이'란 오름 지명에 대해 전해지는 바는 없다. 그 어원도 미상이라고 하면서 민간에서나 학계에서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고전에는 1709년 탐라지도에 성진악(星眞岳), 제주삼읍도총지도와 1872년 제주삼읍전도에 성진악(星珍岳), 1965년 제주도에 성진이오름과 성진악(星辰岳)으로 표기됐다. 이처럼 오름 지명으로 나타나는 표기는 성진(星眞), 성진(星珍), 성진(星辰) 등이며, 지역에서는 그냥 '성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음성형 때문에 '성진이' 자체가 고유어라는 추정도 내놓아보지만, 그 뜻은 확실치 않다고 한 발 뺀다. 이렇게라도 추정하는 것은 '성진'의 한자표기가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오름의 지명에서 '마루'를 산등성이라는 의미로 흔히 쓴다. 좌보미오름, 수월봉의 별칭 '한자두', 모지오름, 남조순오름 등에서 볼 수 있다. 이걸 한자로 표기하면서 '마루 지(旨)'를 차용하게 되는데, 좌보미오름에서는 '좌', 한자두(수월봉)에서는 '자', 모지오름에서 '지' 등으로 나타난다. 법정악, 망젱이, 젯그린동산에서 보듯이 '마루 지(旨)'는 '자'로 발음되는 경우도 흔히 나타난다. 어떤 경우에는 '체'로도 발음한다. 그런데 이 '자'라는 말은 '자'라는 발음과도 거의 구분하지 않고 사용됐다. 중세국어에서는 '자(字)'를 '자'로 읽고, '자식(子息)'을 '자셕' 혹은 '자식'이라 했다.



세성제, '세 개의 마루'라는 뜻


성(城)의 고유어는 '자'다. 지금은 '자'라고 하면 못 알아들을 정도지만 15세기에는 일상적으로 성을 '자'라 했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마루'를 지시하려고 '자' 혹은 '지'라고 발음한 것을 '성(城)'으로 차자하게 된다. 성진이오름 역시 '마르(혹은 마루)' 즉, 능선이 평평하므로 이렇게 '성(城)'으로 차자한 것이고, 어쩌면 '성악(城岳)'으로도 차자했을 수 있다. 그러다 지명을 3음절로 부르는 것이 관행화되면서 이런 2음절 지명은 점차 불편했을 것이므로, 여기에 다시 '자(마루 旨)'를 덧붙여 '성자악'이라는 의미로 '성자이'로 변했을 것이다. 이런 지명은 원래 차자의 의미는 점차 잊히고 '성잔이'로 되고 이걸 다시 '성'을 '별 성(星)'으로, '잔'을 '진(眞)', '진(珍)', '진(辰)'으로 차자해 오늘날의 지명 성진악(星眞岳), 성진악(星珍岳), 성진악(星辰岳), 성진이오름으로 정착하게 됐다.

이러한 추정은 삼형제오름 지명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삼형제오름은 삼형제산(三兄弟山)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1100도로의 1100고지에 연접한다. 1997년 제주도에서 발간한 '제주의 오름'에는 1100도로 탐라각휴게소에서 동서로 나란히 서 있는 3개의 오름으로 삼형제오름(세오름)이라 하며, 차례로 큰오름, 샛오름, 말젯오름이라 따로 부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오름들은 줄지어 서 있는 자세로 세오름의 정상부는 다소 평평하며, 서쪽으로 흘러내린 형태의 말굽형 화구를 갖는 일정한 경향성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런 지형적 특징은 중요하다. 제주도에서 흔히 '마르'라고 부르는 지형이다.



산(山)은 위가 평평한 ‘마루’라는 뜻


1653년 탐라지에 삼장동(三長洞), 이후 여러 고전에 삼장산(三長山), 삼장악(三長岳) 등으로 표기됐다. 삼장동(三長洞), 삼장산(三長山), 삼장악(三長岳) 등 전부요소는 삼장(三長)으로 일치한다. 1573년 탐라지에 '삼장동(三長洞)'에 '동(洞)'을 붙인 것은 이 일대에 샘이 있고, 항시적으로 물이 고이는 습지가 있어 '골'로 인식한 데서 온 것일 것이다. '골'은 '동(洞)'으로 차자하는 관행이 있다. '삼장악(三長岳)'이라 하여 '악(岳)'을 붙인 것은 오름임을 나타내려고 한 표기다. 그런데 '삼장산(三長山)'이라고 '산(山)'을 붙인 것은 조금 다르다. 제주도에서 수산(水山), 토산(土山), 기산(箕山), 체산(體山)처럼 '산(山)'이 들어간 지명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산(山)은 악(岳)의 뜻으로 쓴 것이 아니라 '마루'를 나타내려고 쓴 것이다. 이 오름들이 '마루'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삼장(三長)'의 '장(長)'은 '길 장'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긴'이라는 뜻으로 쓴 것이 아니라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진이'가 '성자이→성잔이→성진이'가 된 과정과 같이 '세자이→세잔이→세진이'의 과정에서 나타난 '세진이'의 '진'을 '긴'으로 인식하고 쓴 훈독자거나 '자' 혹은 '잔'의 뜻과는 무관하게 '진'을 나타내려고 한 훈가자로 쓴 것이다. 세 개의 나란한 마르(마루)라는 뜻으로 쓴 것이 '삼장악'이다.

오늘날엔 삼형제오름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것은 지역에서 '세성제오름'이라고 부르는 것을 좀 더 표준어화해서 붙인 것이다. 그러나 '세성제'라는 말이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나란히 서 있는 세 개의 오름이 삼형제 같다는 뜻에서 온 말이 아니다. '자 성(城)'과 '마루 지(旨)'가 결합한 말로 성진이오름의 지명과 같은 기원이다. 삼형제오름이란 표기는 과잉 해독의 소산이다. 세 개의 마루(오름)가 나란히 있다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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