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뒷자리에 태워줘
입력 : 2026. 06. 01(월) 02:00
진명현 hl@ihalla.com
너에게 원한 건
영화 '뒷자리에 태워줘'.
[한라일보] 한 눈에 반하는 순간을 바로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표현은 흔히 쓰이지만 사실 그것은 '거부할 틈도 없이 매혹 당했다'는 순간의 감각에 가깝다. 누구에게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좀 더 천천히 올 것이다. 매혹이라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감각의 실체를 손으로 일일이 더듬어 가며 시간을 쓰고 수시로 서로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 보아야 그래야 알게 된다 내 매혹의 실체를. 그러니 처음의 매혹이 변색하지 않고 그 위에 덧씌워지는 겹겹의 발색이야 말로 사랑이 아닐까.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는 이에게 돌아오는 시간의 선물이다. 그리고 그중 에서도 영원히 잊히지 않는 그 이상한 시간의 감각을 서로에게 선물했던 순간을 우리는 첫사랑이라고 부른다.

콜린(해리 멜링)은 순한 구석이 많아 보이는 청년이다.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특별한 시간에 그는 가족과 함께 차에 타고 단골 술집으로 향하는 중이다. 그곳에서 그는 중창단과 함께 아카펠라 공연을 선보일 예정인 동시에 엄마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할 예정이다. 어두운 겨울 밤 콜린이 탄 차 앞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맹렬한 기세로 질주해 나간다. 곧 콜린의 인생 안으로 돌진해 들어올 남자 레이(알렉산더 스카스카드)가 그 오토바이의 운전자다. 말하자면 운명처럼 콜린이 향한 술집 안에 레이도 있다.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튀어 나온 것 같은 근사한 바이커 복장을 한 미남자 레이에게서 콜린은 시선을 뗄 수가 없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레이가 콜린에게 쪽지를 건넨다. 심지어 크리스마스 카드에 쓴 만남을 청하는 문구들이다. 콜린은 애초부터 거부할 마음도, 거절할 핑계도 없이 레이에게 완전히 매혹된 상태로 그의 지시어를 말씀처럼 부여잡고 레이가 명시한 시간과 장소로 향한다. 레이 또한 그 술집에서 콜린을 알아 봤다는 것은 콜린에게 크리스마스의 축복이 아닐 리 없다. 그럼 이제 둘은 서로를 차근차근 알아가며 차근차근 행복한 커플로 거듭나는 것일까? 아니 아니 <뒷자리에 태워줘>는 그런 방식으로 관객을 애태우는 영화가 아니다. 약속 장소인 어둑한 밤의 골목에서 레이는 콜린에게 일방적인 성행위를 요구하고 콜린은 그 순간 놀라울 정도로 충만함을 느낀다. 오! 홀리 나잇에 예상치 못한 천생연분의 탄생이다. 할렐루야.

퀴어 영화인 동시에 BDSM을 전면에 다루고 있는 영화 <뒷자리에 태워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바이커에 덜컥 올라탄 콜린과 사랑이라는 안정적인 승차감을 용인할 수 없는 레이 두 사람 모두의 성장 영화다. 욕망은 사랑보다 더 손 쉽게 서로 다른 이의 세계를 이어 붙인다. 당신이 누구이고 어떤 세계에 속했는지 보다 우리가 지금 원하는 것에 합의가 되었는지를 통해 쉽게 판가름나는 관계도 세상에는 있기 마련이다. 영화 속 레이의 세계가 그렇다. 이를테면 게이 바이커 무리의 킹카로 보이는 레이는 아마도 콜린 같은 수많은 '헌신자'들의 구애를 받아온 우성의 수컷으로 보인다. 그에게는 어려울 것이 없다. 명령하고 요구하며 거부하고 취한다. 자신의 집 안으로 콜린을 들이는 일은 그에겐 조금도 어려울 것이 없다.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자신의 집 만큼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콜린을 자신의 삶 안으로 들여 놓을 이유와 여유가 레이에게는 없다. 명확한 주종관계로 시작된 이 커플이 흔들림 없이 유지되려면 콜린은 영원히 레이에게 복종해야 한다. 콜린이 이상형이자 동시에 이상향으로서 레이에게 매혹되었다면 레이가 콜린을 선택한 이유는 그저 콜린이 알맞은 시점에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위계를 콜린이 당연한 듯 받아 들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뒷자리에 태워줘>는 섹스신의 수위가 높다. 가학적이고 일방적이다. 그렇지만 선정적인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두 사람이 합의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레이와 콜린은 수시로, 다양한 체위로,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몸을 섞으며 가까워진다. 그렇게 시간을 쌓아가자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각자의 삶 안으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구멍이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관계가 변하기 시작한다. 감정의 언어가 몸 위에 새겨진다. 쾌락의 종료 이후에도 나누고 싶은 것들이 생긴다. 이 변화는 콜린으로부터 시작되지만 레이 또한 모를 리 없는 변화다. 그리고 그 변화가 결국 이들의 다음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는다. 뒷자리에 태웠던 이가 앞자리의 운전대에 앉고 언제나 밑에 있던 이가 위로 올라온다. 관계의 전복에서 두 사람은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서로를 위해서 그리고 누구보다 나를 위해서.

<뒷자리에 태워줘>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매혹을, 그 빙산의 일각을 맹렬하게 더듬는 영화다. 기어코 손을 댄 얼음으로부터 입은 화상의 아픔을 닮은 첫사랑이라는 통증이 생생하게 영화에 새겨져 있다. 그 불에 데인 것 같은 만남 이후 콜린과 레이 모두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본다. 서로를 안고 더듬고 할퀴던 시간들이 둘 모두에게 어떤 빗장을 풀게 하고 벽장의 밖으로 나갈 기회를 준 것이다. 콜린과 레이가 영원히 함께 행복할 수는 없지만 각자의 인생에 서로가 있었기에 마침내 나로 살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언젠가 웃으며 추억하리라 믿는다. 어떤 딱지이건 새살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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