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주의 문화광장] 한 예술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입력 : 2026. 06. 23(화) 03:00수정 : 2026. 06. 23(화) 06:26
김연주 hl@ihalla.com
가가

[한라일보]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어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데이비드 호크니가 지난 11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작가의 삶을 생각하던 중에 그가 팝아트 작가로도 언급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마 필자가 미술사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팝아트가 어디서 탄생했냐는 질문에 미국이라고 답할 것 같다. 팝아트의 대명사가 된 앤디 워홀이 미국에서 활동했고, 작품의 기반이 되는 만화, 광고,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가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팝아트는 영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인디펜던트 그룹의 활동을 초석으로 삼아 이후 팝아트를 선보인 리처드 해밀턴의 1956년 작품 '도대체 무엇이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가'는 영국이 팝아트의 원조임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 또한, 팝아트라는 용어도 영국 평론가 로렌스 알로웨이가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이처럼 영국에서 처음 시작했고 중요한 예술가와 평론가가 있음에도, 팝아트는 미국을 대표하는 예술로 자리를 잡았다.
팝아트가 미국의 미술이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1950년대 냉전 시대에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대비시켜 미국의 자유를 보여준다고 여겨진 추상표현주의를 미국 정부가 후원하면서 미국의 대표 미술이 되었다면, 이후 팝아트는 1960년대 미국이 이뤄낸 풍요를 과시할 수 있는 미술이었기에 주목받았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앤디 워홀과 미국 대중매체의 영향도 주된 이유다.
팝아트에 있어 필자에게 가장 흥미로운 점은 앤디 워홀을 둘러싼 많은 논쟁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팝: 소비의 예술?'(1970), 안드레아스 후이센의 '팝아트의 문화정치학'(1975), 롤랑 바르트의 '미술, 그 오래된 것…'(1980), 토머스 크로우의 '토요일의 재난: 워홀의 초기 작업에서 보이는 흔적과 지시'(1987), 핼 포스터의 '실재의 귀환'(1996) 등은 서로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특히 앤디 워홀의 작품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는 의견과 작품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의견의 대립은 흥미진진하다.
미국 미술을 만들고자 했던 노력이 어떻게 보면 유럽 미술에 대한 열등감에서 온다고 깎아내릴 수 있겠지만, 중요한 점은 그렇게 탄생한 미술이 세계 미술계를 이끌게 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제주도 미술이라는 제주도 내의 요구가 중심에 대한 열등감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제주도 미술이 한국 미술계를 이끌 새로운 흐름이 될 수 있다.
다만 현재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는 제주도 미술계의 가능성과 의미를 밝혀내는 작업이 이어져야 하고,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며, 관심과 지지를 보내야 한다. 호크니를 보내며 새롭게 떠오를 제주도 작가를 기대해 본다. <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그러나 팝아트는 영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인디펜던트 그룹의 활동을 초석으로 삼아 이후 팝아트를 선보인 리처드 해밀턴의 1956년 작품 '도대체 무엇이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가'는 영국이 팝아트의 원조임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 또한, 팝아트라는 용어도 영국 평론가 로렌스 알로웨이가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이처럼 영국에서 처음 시작했고 중요한 예술가와 평론가가 있음에도, 팝아트는 미국을 대표하는 예술로 자리를 잡았다.
팝아트가 미국의 미술이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1950년대 냉전 시대에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대비시켜 미국의 자유를 보여준다고 여겨진 추상표현주의를 미국 정부가 후원하면서 미국의 대표 미술이 되었다면, 이후 팝아트는 1960년대 미국이 이뤄낸 풍요를 과시할 수 있는 미술이었기에 주목받았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앤디 워홀과 미국 대중매체의 영향도 주된 이유다.
팝아트에 있어 필자에게 가장 흥미로운 점은 앤디 워홀을 둘러싼 많은 논쟁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팝: 소비의 예술?'(1970), 안드레아스 후이센의 '팝아트의 문화정치학'(1975), 롤랑 바르트의 '미술, 그 오래된 것…'(1980), 토머스 크로우의 '토요일의 재난: 워홀의 초기 작업에서 보이는 흔적과 지시'(1987), 핼 포스터의 '실재의 귀환'(1996) 등은 서로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특히 앤디 워홀의 작품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는 의견과 작품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의견의 대립은 흥미진진하다.
미국 미술을 만들고자 했던 노력이 어떻게 보면 유럽 미술에 대한 열등감에서 온다고 깎아내릴 수 있겠지만, 중요한 점은 그렇게 탄생한 미술이 세계 미술계를 이끌게 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제주도 미술이라는 제주도 내의 요구가 중심에 대한 열등감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제주도 미술이 한국 미술계를 이끌 새로운 흐름이 될 수 있다.
다만 현재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는 제주도 미술계의 가능성과 의미를 밝혀내는 작업이 이어져야 하고,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며, 관심과 지지를 보내야 한다. 호크니를 보내며 새롭게 떠오를 제주도 작가를 기대해 본다. <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