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愛 빠지다]이미례 영화감독
입력 : 2014. 11. 28(금) 00:00
고대로 기자 bigroa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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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이 너무 좋아 제주행"
"남도제철전문 음식점 개업
"남도제철전문 음식점 개업

영화감독 이미례씨는 "제주에 완전히 정착해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강희만기자
제주 오기 전에 서적 탐독
어떤식으로든 영화에 공헌"
'수렁에서 건진 내 딸'로 유명한 이미례(56) 영화감독이 제주에서 영화가 아닌 남도제철음식으로 스크린의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이 감독은 지난 4월 제주시 연동에 남도제철전문음식점 '여자만'을 개업했다. '여자만'은 여자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여수와 고흥 사이에 있는 만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꼬막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여자만' 본점은 서울 인사동에 있는데 개업후 영화 관계자들이 드나들면서 입소문을 타고 인사동의 유명 맛집으로 자리잡았다.
동국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한 이 감독은 대학 2학년 때 조감독으로 영화판에 뛰어들어 7~8년 동안 조감독생활을 하다가 28세 때 '수렁에서 건진 내딸'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영심이', '학창보고서' 등을 제작하는 등 1990년대까지 청소년·젊은이들에 관한 하이틴 영화를 만들었다. 1988년에는 백상예술대상에서 '물망초'라는 작품으로 신인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영화를 만들다가 지쳐서 잠시 모프로덕션에 방송연출을 하는 외도를 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방송연출을 하다가 2000년대 초반에 다시 한번 영화를 준비했으나 시간이 흘러 달라진 영화판에서 다시 영화를 시작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을 하고 음식점을 열기로 결심했다.
이 감독은 "시댁이 전라도에 있다보니 남도음식을 많이 접하게 됐고 제사때 쓰는 맛있는 음식을 그대로 가져다가 장사를 하면 되겠다고 판단을 해서 음식점을 열기로 했다"며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것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먼저 인사동에 음식점을 오픈했고 3~4년전부터 제주에서 장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오다가 지난 4월에야 제주점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왜 하필이면 제주를 선택했을까. 이 감독은 "강원도를 비롯해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바람과 구름이 너무 좋아 제주에서 선택했다. 앞으로 남편을 제주로 데리고 와서 농사도 짓게 만들겠다"며 "처음에는 답답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조금만 나가면 바다를 볼 수 있고 바람과 구름이 있어 너무 시원하다"고 말했다.
제주에 오기전에 제주인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도 많이 했다. "오기전 시간이 날 때마다 현기영 선생의'변방에 우짖는 새' '순이 삼촌',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권 제주도편' 등을 읽으면서 제주 사람들의 정서와 문화를 이해하게 됐다"고 이 감독은 설명했다.
이 감독은 "시내에서 살다가 조금 자신이 생기면 살짝 시내를 벗어난 곳에서 잠시 살고 또 더 먼 곳으로 옮기고 그러다가 나중에 적당한 곳에 집을 구입할 예정"이라며 "제주에 오자마자 막걸리를 사들고 영등할망에게 잘 보살펴달라고 기도를 하기 위해 한라산 정상에 올라갔는데 막걸리가 얼 정도로 너무 추워서 혼이 났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노년에는 제주에 완전히 정착해 지인들과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의 영화인생은 중단된 것일까. 이 감독은 "아직은 영화가 끝난 것은 아니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안되겠지만 좋은 충동이 일어나면 멀리서 그림을 보는 작업, 영화를 할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도 어떤식으로라도 영화에 공헌을 하고 싶다. 손을 놓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어떤식으로든 영화에 공헌"
'수렁에서 건진 내 딸'로 유명한 이미례(56) 영화감독이 제주에서 영화가 아닌 남도제철음식으로 스크린의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이 감독은 지난 4월 제주시 연동에 남도제철전문음식점 '여자만'을 개업했다. '여자만'은 여자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여수와 고흥 사이에 있는 만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꼬막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여자만' 본점은 서울 인사동에 있는데 개업후 영화 관계자들이 드나들면서 입소문을 타고 인사동의 유명 맛집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영심이', '학창보고서' 등을 제작하는 등 1990년대까지 청소년·젊은이들에 관한 하이틴 영화를 만들었다. 1988년에는 백상예술대상에서 '물망초'라는 작품으로 신인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영화를 만들다가 지쳐서 잠시 모프로덕션에 방송연출을 하는 외도를 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방송연출을 하다가 2000년대 초반에 다시 한번 영화를 준비했으나 시간이 흘러 달라진 영화판에서 다시 영화를 시작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을 하고 음식점을 열기로 결심했다.
이 감독은 "시댁이 전라도에 있다보니 남도음식을 많이 접하게 됐고 제사때 쓰는 맛있는 음식을 그대로 가져다가 장사를 하면 되겠다고 판단을 해서 음식점을 열기로 했다"며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것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먼저 인사동에 음식점을 오픈했고 3~4년전부터 제주에서 장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오다가 지난 4월에야 제주점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왜 하필이면 제주를 선택했을까. 이 감독은 "강원도를 비롯해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바람과 구름이 너무 좋아 제주에서 선택했다. 앞으로 남편을 제주로 데리고 와서 농사도 짓게 만들겠다"며 "처음에는 답답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조금만 나가면 바다를 볼 수 있고 바람과 구름이 있어 너무 시원하다"고 말했다.
제주에 오기전에 제주인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도 많이 했다. "오기전 시간이 날 때마다 현기영 선생의'변방에 우짖는 새' '순이 삼촌',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권 제주도편' 등을 읽으면서 제주 사람들의 정서와 문화를 이해하게 됐다"고 이 감독은 설명했다.
이 감독은 "시내에서 살다가 조금 자신이 생기면 살짝 시내를 벗어난 곳에서 잠시 살고 또 더 먼 곳으로 옮기고 그러다가 나중에 적당한 곳에 집을 구입할 예정"이라며 "제주에 오자마자 막걸리를 사들고 영등할망에게 잘 보살펴달라고 기도를 하기 위해 한라산 정상에 올라갔는데 막걸리가 얼 정도로 너무 추워서 혼이 났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노년에는 제주에 완전히 정착해 지인들과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의 영화인생은 중단된 것일까. 이 감독은 "아직은 영화가 끝난 것은 아니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안되겠지만 좋은 충동이 일어나면 멀리서 그림을 보는 작업, 영화를 할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도 어떤식으로라도 영화에 공헌을 하고 싶다. 손을 놓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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