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4·3을 기억하고 애도한 100세 작가의 삶
입력 : 2025. 09. 19(금) 04:30
박소정 기자 cosorong@ihalla.com
김석범의 『보름달 아래 붉은 바다』
[한라일보] "죽은 자는 지상에서 살 수 있는 우리들 안에 함께 있다. 도대체 4·3이란 사태는 지상에서 어울릴 수 없는 참극이며, 작품으로서 어울려 있다 하더라도 내용의 현실은 영원히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

'까마귀의 죽음', '화산도' 등 제주4·3을 다룬 소설을 써온 재일제주인 작가 김석범. 최근에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집 '보름달 아래 붉은 바다'에 1925년생으로 올해 상수(上壽·100세)가 된 작가가 새로 집필한 서문은 그가 여전히 제주의 아픈 역사인 4·3을 천착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소설집은 2022년 일본에서 발표한 소설로, 이번에 한국어로 옮겼다. 표제작 '보름달 아래 붉은 바다'를 비롯해 '소거된 고독', '땅의 동통' 등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일본 문예지에 발표된 세 편의 작품이 실렸다.

이들 소설에는 모두 작가 K(케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작가 K는 '까마귀의 죽음', '화산도', '바다 밑에서, 땅 밑에서', '만월' 등을 쓴 소설가로 설정돼 있는 만큼 이 소설에는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이 소설에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소거된 고독'은 90세 소설가가 삶의 절망 끝에 섰던 센다이 시절에 썼던 '요나키소바' 등 세 편의 작품을 비교해 읽으면서 작품 속 '고독'이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를 고민한다. 또 센다이를 떠나고 3년 뒤 들려온 벗의 죽음과 4·3으로 제주에서 밀항해 온 이들과 보낸 쓰시마에서의 하룻밤, 그리고 소설 '까마귀의 죽음'을 쓰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냈다.

표제작인 '보름달 아래 붉은 바다'는 노 작가가 그의 지인 '영이'와 '바다 밑에서, 땅 밑에서'라는 작품을 둘러싼 대화를 통해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실존 문제와 함께 4·3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문제를 되짚는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 7월 보름달 뜬 산지항 앞바다에 500명이 내던져진 비극적인 소문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땅의 동통'은 4·3과 제주를 무대로 하는 소설 '화산도'를 집필한 작가가 42년 만에 이룬 한국행을 둘러싼 에피소드와 산천단에서 '화산도'의 주인공 이방근과 만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역자는 "4·3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작가가 4·3 당사자와 그들의 기억을 만나며 그것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을 통해 4·3의 공론화와 작품화를 반복했다. 그 특수성은 기억과 역사를 대하는 삶의 자세와 그 문제라는 데 있어 보편성을 획득한다는 점"이라면서 지난해 7월 작가를 만났다는 그는 "거동이 많이 불편해지시고 수척해지셨지만 변함없는 것은 여전한 눈빛과 창작을 향한 열정이었다"고 전했다. 옮김 조수일. 소명출판.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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