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놓아 부르고 싶던 아버지”.. 4·3희생자 70여년만의 귀향
입력 : 2026. 02. 03(화) 16:47수정 : 2026. 02. 03(화) 18:00
양유리 기자 glassy3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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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희생자 7인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 열려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 피해자 중 4·3희생자 첫 발견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 피해자 중 4·3희생자 첫 발견

3일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
[한라일보] “얼굴도 모르지만 저를 있게 해준 아버지. 많이 그립고, 보고 싶고, 목놓아 불러보고 싶은 아버지. 살아 있을 때 시신으로라도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제주4·3 당시 형무소 등으로 무참히 끌려가 생을 마감한 희생자 7명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3일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날 보고회에는 희생자 유가족들과 오영훈 제주도지사,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김창범 제주4·3유족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들은 도외 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된 희생자 5명과 도내 행방불명된 희생자 2명 등 총 7명이다. 대전 골령골에서 3인(김사림·양달효·강두남),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2인(임태훈·송두선), 제주공항에서 2인(송태우·강인경)의 유해가 발굴됐다.
김사림 씨는 한라산에서 피난 생활 중 1949년 2월경 주정공장수용소에 수감된 뒤 가족과 소식이 끊겼다. 이후 대전형무소에 수감됐으나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학살됐다. 양달효 씨도 1948년 6월 주정공장수용소에 수감된 뒤 대전형무소로 이감, 마찬가지로 골령골에서 집단학살 당했다. 강두남 씨는 1949년 7월 대전형무소로 수감된 사실이 확인됐으며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전 골령골에서 희생당했다.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는 1950년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좌익으로 몰린 민간인 수천명이 대한민국 군경과 조선인민군 등에 의해 집단학살됐다.
임태훈 씨는 1948년 12월 경찰에 연행된 후 행방불명됐다. 이후 목포형무소를 거쳐 대구형무소로 이감,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희생됐다. 송두선 씨도 1949년 봄 경찰에게 연행된 뒤 같은 해 7월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마찬가지로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학살됐다.
경산 코발트광산에서도 1950년 대구형무소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한 집단학살이 이뤄졌다. 군경은 재소자들을 코발트 광산 수직 갱도 입구에 일렬로 세워놓고 총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신원 확인을 통해 처음으로 경산 코발트광산 집단학살 피해자 중 4·3 희생자가 포함된 사실이 드러났다.
송태우 씨는 1948년 11월 한라산에서 피난생활하던 중 소식이 끊겼고, 제주공항에서 2007년 유해가 발굴됐다. 강인경 씨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경찰에게 연행된 뒤 행방불명됐고 60여 년이 흘러 제주공항에서 유해가 발굴됐다.
이로써 도내외 발굴유해 426구 중 도내 147명, 도외 7명 등 총 154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김창범 제주4·3유족회장은 “야만적인 국가폭력에 의해 차디찬 땅 속에 묻혀야 했던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며 “오늘의 신원 확인은 영령들의 조카와 손자, 외손자까지 채혈에 참여한 덕분에 가능했다. 더 많은 유가족들이 채혈에 참여하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한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제3기가 오는 26일 출범하면서 한국전쟁 시기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과 고문, 구금 등에 대해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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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당시 형무소 등으로 무참히 끌려가 생을 마감한 희생자 7명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날 보고회에는 희생자 유가족들과 오영훈 제주도지사,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김창범 제주4·3유족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들은 도외 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된 희생자 5명과 도내 행방불명된 희생자 2명 등 총 7명이다. 대전 골령골에서 3인(김사림·양달효·강두남),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2인(임태훈·송두선), 제주공항에서 2인(송태우·강인경)의 유해가 발굴됐다.
김사림 씨는 한라산에서 피난 생활 중 1949년 2월경 주정공장수용소에 수감된 뒤 가족과 소식이 끊겼다. 이후 대전형무소에 수감됐으나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학살됐다. 양달효 씨도 1948년 6월 주정공장수용소에 수감된 뒤 대전형무소로 이감, 마찬가지로 골령골에서 집단학살 당했다. 강두남 씨는 1949년 7월 대전형무소로 수감된 사실이 확인됐으며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전 골령골에서 희생당했다.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는 1950년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좌익으로 몰린 민간인 수천명이 대한민국 군경과 조선인민군 등에 의해 집단학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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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 |
경산 코발트광산에서도 1950년 대구형무소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한 집단학살이 이뤄졌다. 군경은 재소자들을 코발트 광산 수직 갱도 입구에 일렬로 세워놓고 총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신원 확인을 통해 처음으로 경산 코발트광산 집단학살 피해자 중 4·3 희생자가 포함된 사실이 드러났다.
송태우 씨는 1948년 11월 한라산에서 피난생활하던 중 소식이 끊겼고, 제주공항에서 2007년 유해가 발굴됐다. 강인경 씨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경찰에게 연행된 뒤 행방불명됐고 60여 년이 흘러 제주공항에서 유해가 발굴됐다.
이로써 도내외 발굴유해 426구 중 도내 147명, 도외 7명 등 총 154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김창범 제주4·3유족회장은 “야만적인 국가폭력에 의해 차디찬 땅 속에 묻혀야 했던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며 “오늘의 신원 확인은 영령들의 조카와 손자, 외손자까지 채혈에 참여한 덕분에 가능했다. 더 많은 유가족들이 채혈에 참여하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한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제3기가 오는 26일 출범하면서 한국전쟁 시기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과 고문, 구금 등에 대해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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