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풍경 - 어제와 오늘] 신정에서 구정으로… "멩질 먹으레 간다"
입력 : 2026. 02. 13(금) 02:00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1990년 설 명절 윷놀이 하는 아이들. 한라일보DB
'설날' 이름 되찾은 해 1989년
1990년 도내 가정 73% "설 쇤다"
시대 변화로 세시 풍속 퇴색 속에
합동 세배 등 공동체 화합 자리

[한라일보] 1990년 1월 26일 자 한라일보 5면엔 '명절 풍속도가 바뀐다'는 제목 아래 달라진 설 풍경을 비중 있게 다뤘다. 그해엔 양력 1월 27일이 설날이었다. 제주도의 현황 조사를 토대로 1989년 2월 정부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개정 이래 제주에서도 '신정'에서 '구정'으로 전환한 가정이 전체의 73%로 전년(44%)보다 크게 늘었다는 기사였다.

우리나라에는 오랜 기간 음력설(구정)과 양력설(신정) 두 개의 설이 있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한 해의 시작인 음력 1월 1일을 일컫는 설날은 삼국시대 문헌에서부터 등장한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설날과 같은 명절이 억압당했고 광복 이후에도 이중과세의 낭비성 등을 이유로 신정이 권장됐다. 그러다 1989년 정월 초하루부터 본명인 '설날'을 되찾았고 1999년 1월 1일부터는 신정 휴일이 하루로 축소되면서 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제주에선 설 명절을 '정월멩질'이라고 불렀다. 친족들이 모여 세배를 하고 제를 지내는 일을 두고 "멩질 먹으레 간다"고 했다. 아이들은 새 옷을 입고 '곤밥'을 양껏 먹을 수 있는 이날을 기다렸다.

1992년 설날 차례를 지내는 가족. 한라일보DB
이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옛이야기가 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제주민속문화의 해에 엮은 '덕수리 민속지'(2007)를 보면 이전에는 몇 군데를 돌며 멩질을 먹다가 친족이 줄어들며 서로 간편히 하자고 해서 각자 집에서 명절을 치른다는 마을 주민 구술 조사 내용이 담겼다. 청년회, 부녀회에서 준비해 마을 단위로 세배하는 행사는 1970년대 초부터 행해졌다고 한다. 떡집에 전화만 하면 배달해주기 때문에 더 이상 집에서 떡을 빚지 않는다는 변화상도 실렸다.

현용준의 '제주도 사람들의 삶'(2009)에 수록된 '사라지는 여러 민속들' 중의 하나인 '세배'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보인다. "정월 초하루 명절의 제의가 끝나면 으레 동네 세배를 다녀야 하는 것이 우리의 풍속이다. 세배를 다녀야 하는 순서는 먼저 동네에 상을 놓은 집, 다음이 웃어른 집이다. 상을 놓은 집이란 부모 조상이 돌아가서 아직 삼년상을 다 넘기지 못한 집이다. 이런 집에서는 구들(방)에 병풍을 치고 큰 제상을 세워 갖가지 제물을 올리고, 상제가 상복을 입고, 상장을 짚어 대기하고 있다."

세시 풍속이 갈수록 희미해지면서 설 차례상을 차리지 않는 집들이 적지 않다. 여행객들이 제주 등 곳곳으로 떠나는 시기도 설 연휴 기간이다.

이런 가운데 합동 세배, 신년 인사회 등을 펼치는 제주 마을들이 있다. 새해 덕담을 나누며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자리다.

닷새간의 설 연휴가 이어진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신성한 날'이라는 설의 의미를 새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71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기획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