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지나도 무뎌지지 않는 그리움… 4·3유족의 눈물
입력 : 2026. 04. 03(금) 15:05수정 : 2026. 04. 03(금) 15:26
양유리 기자 glassy38@ihalla.com
제78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행불인 묘역
유족들, 마른 천으로 표석 닦으며 제 지내
3일 오전 제78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서 추모객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희만기자
[한라일보] “아버지 얼굴은 몰라도 보고 싶죠. 매일 울면서 살았어요. 우리 부모는 대체 어디에 계실까. 그리운 건 무뎌지지가 않더라고요.”

제78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거행된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 어둑한 하늘 아래로 까마귀들이 표석 사이사이로 날아들었다. 유족들은 준비해 온 음식과 술을 올리며 작은 제를 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부영배(81, 서귀포시 토평동)씨는 4·3으로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셋을 모두 잃었다. 부씨가 3살 때 작은아버지 셋이 실종됐다. 몇 해 지나지 않아 아버지 또한 소식이 끊겼고 제주시 조천읍 대흘리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부씨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들이 억울하게 돌아가신 건 중학교 때 알았다. 하지만 당시엔 4·3 희생자 아들이라고 하면 동네에서 매 맞던 시절”이라며 “평화공원이 생기고 이제 말해도 되는 분위기가 생겨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살아 있는 동안 작은 아버지들 유해를 찾는 게 유일한 소망이다”라고 말했다.

3일 오전 제78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부영배씨가 작은 아버지 표석 앞에서 제를 지내고 있다. 양유리기자
자그마한 돗자리를 펴고 절을 하던 김축생(89, 제주시 구좌읍)씨는 표석을 보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김씨의 아버지 고(故) 김경현씨는 주정공장의 노동자였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목포형무소로 끌려갔다. 이후 부천형무소로 옮겨 석방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한국전쟁이 터진 뒤로 영영 소식이 끊겼다. “우리 아버지가 뭘 잘못했길래. 이유 없이 그렇게 허망하게… 너무 억울하고 서럽습니다.”

고 이정우씨의 아들 이철수(80, 서귀포시 대정읍)씨는 2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사진도 없으니 아버지 얼굴을 기억나지 않는다. 이씨 역시 아버지 생일을 제삿날로 삼고 있다. 4·3평화공원 행불인 표석이 마련된 뒤로는 한 해도 빠짐없이 이곳을 찾는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잊을 수가 없어서다. 아버지가 언제 가장 그립냐는 질문에 이씨는 “그런 게 어딨어. 안 그런 날이 없지”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김경순(87, 제주시 화북동)씨는 아버지 고 김광진씨의 표석을 마른 천으로 닦았다. 표석 앞에는 말린 오징어와 밤, 대추, 찐빵, 술이 놓여 있었다. 일본에서 태어난 김씨는 가족과 함께 제주로 넘어왔다. 하지만 김씨가 11살 때 아버지인 고 김광진씨가 경찰에게 잡혀갔다. 포승줄에 손목이 묶인 아버지의 뒷모습이 김씨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아버지 없이 살다 보니 얼마나 손가락질을 받았는지 몰라. 그래서 어머니가 악착같이 우리를 키웠어. 이제라도 아버지 유해를 찾고 싶은데 이젠 너무 늦은 것 같아. 하늘에서 편안하시길 바랄 뿐이지…”

3일 오전 제78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 강희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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