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택의 한라칼럼] 영주10경과 탐라죽지사
입력 : 2026. 04. 28(화) 01:00
문영택 hl@ihalla.com
가가

[한라일보] 천리 밖 남녘 바닷가 초집 한 채(千里南溟一草堂), 장수별 노인성 보는 성은 입어(聖恩許見壽星光), 밤마다 앉아 외로운 충정 향 사르며(孤衷夜夜焚香坐), 감읍할 적마다 흰머리 느네(感泣頭邊白髮生).
이 글은 은사 추사 김정희에게 바치는 제자 매계 이한우(진)의 시다. 훗날 남국태두(南國泰斗)로 불린 매계를 위시로 여러 선비들이 지역특색과 자연생성 이치를 반영해 지은 한시가, 그 유명한 영주10경이다. 영주10경을 읊은 제주선비로는 이한우·김양수·김희정 등이 있으며, 육지선비로는 이용식·김창현·김계두 등이다.
해가 뜨고 지니(성산출일·사봉낙조), 사계절이 운행되고(영구춘화·정방하폭·귤림추색·녹담만설), 음양의 조화가 이뤄지니(영실기암·산방굴사) 사람과 동식물이 태어나더라(산포조어·고수목마). 영주10경에 깃든 선인들의 지혜가 놀랍고 자랑스럽다.(원문=9경 산포조어, 10경 고수목마)
영주10경 탄생 뒤에는 또한 조선말의 강직한 선비 면암 최익현도 있다. 면암이 올린 상소로 대원군 10년 아성이 1873년 무너지고, 결국 면암도 제주에 유배된다. 이를 기화로 매계는 면암과 우국충정을 나누고, 매계의 제자 해은 김희정이 쓴 도해록(跳海錄)에 면암은 발문을 쓰고, 귤암 이기온 등과 한라산을 오른 면암은 유(遊)한라산기(記)도 남긴다.
면암을 흠모해 육지에서 온 선비들의 면면을 보자. 전남 강진 출신 율하 이용식은 영주10경을 선정하는 데도 기여했으며, 전라도 관찰사를 1904년 역임했다. 본도의 문사들과 교유한 양암 유담은 평양 태생이며, 경남 하동 출신으로 한라산이 좋아 영운(瀛雲)이란 호를 지은 김계두는 20여 년 지낸 제주에서 생을 마감했다. 특히 전남 강진 출신 연파 김창현은 탐라죽지사(耽羅竹枝詞)라는 14연시를 지었는데, 그 내용 일부는 다음과 같다.
관덕정 앞뜰엔 깃대가 울긋불긋(觀德亭前簇繡旗), 풍류 쫓는 사또 산에 오르려(風流太守上山時), 몸단장 새로이 한 병졸 기녀들(牙兵妓隊新粧束), 호위 받으며 푸른 산으로 향하네(擁出藍輿向翠微). 조천관엔 가는 비 부슬부슬, 연북정 포구엔 물결이 출렁출렁, 밤들자 북소리 둥둥둥, 호남에서 떼 지어 온 장삿배 묶고. 바위 틈새 들어선 달팽이 모양 초가집, 돗통시 외양간 좌우로 들어서고, 한 줄로 늘어선 촐 눌, 한 집안 부모형제 따로 살아가네. 집집마다 독특한 대문 사이 까만 돌담 둘러 있고, 뉘 집에서 들려오는 새각시 방아 찧는 묘음, 온갖 한과 시름 상사곡 되어, 애간장 끊는 소리 되어 들리고. 빛바랜 머리 노래진 해촌 아낙, 어려운 생계 때우려 전복 잡아, 법성포 군산에서 온 장삿배에 다가가, 쌀 흥정 마치고 얼굴 붉히며 돌아가네.
학식과 덕망이 높은 문인들이 뜻을 모아 품제(品題)되고 제영(題詠)됨이 당시 선비들의 작시법이다. 그렇게 빚어진 영주10경은 도 내외 지성인들이 일군 집단지성의 빛나는 산물인 셈이다. <문영택 (사)질토래비 이사장>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이 글은 은사 추사 김정희에게 바치는 제자 매계 이한우(진)의 시다. 훗날 남국태두(南國泰斗)로 불린 매계를 위시로 여러 선비들이 지역특색과 자연생성 이치를 반영해 지은 한시가, 그 유명한 영주10경이다. 영주10경을 읊은 제주선비로는 이한우·김양수·김희정 등이 있으며, 육지선비로는 이용식·김창현·김계두 등이다.
해가 뜨고 지니(성산출일·사봉낙조), 사계절이 운행되고(영구춘화·정방하폭·귤림추색·녹담만설), 음양의 조화가 이뤄지니(영실기암·산방굴사) 사람과 동식물이 태어나더라(산포조어·고수목마). 영주10경에 깃든 선인들의 지혜가 놀랍고 자랑스럽다.(원문=9경 산포조어, 10경 고수목마)
영주10경 탄생 뒤에는 또한 조선말의 강직한 선비 면암 최익현도 있다. 면암이 올린 상소로 대원군 10년 아성이 1873년 무너지고, 결국 면암도 제주에 유배된다. 이를 기화로 매계는 면암과 우국충정을 나누고, 매계의 제자 해은 김희정이 쓴 도해록(跳海錄)에 면암은 발문을 쓰고, 귤암 이기온 등과 한라산을 오른 면암은 유(遊)한라산기(記)도 남긴다.
면암을 흠모해 육지에서 온 선비들의 면면을 보자. 전남 강진 출신 율하 이용식은 영주10경을 선정하는 데도 기여했으며, 전라도 관찰사를 1904년 역임했다. 본도의 문사들과 교유한 양암 유담은 평양 태생이며, 경남 하동 출신으로 한라산이 좋아 영운(瀛雲)이란 호를 지은 김계두는 20여 년 지낸 제주에서 생을 마감했다. 특히 전남 강진 출신 연파 김창현은 탐라죽지사(耽羅竹枝詞)라는 14연시를 지었는데, 그 내용 일부는 다음과 같다.
관덕정 앞뜰엔 깃대가 울긋불긋(觀德亭前簇繡旗), 풍류 쫓는 사또 산에 오르려(風流太守上山時), 몸단장 새로이 한 병졸 기녀들(牙兵妓隊新粧束), 호위 받으며 푸른 산으로 향하네(擁出藍輿向翠微). 조천관엔 가는 비 부슬부슬, 연북정 포구엔 물결이 출렁출렁, 밤들자 북소리 둥둥둥, 호남에서 떼 지어 온 장삿배 묶고. 바위 틈새 들어선 달팽이 모양 초가집, 돗통시 외양간 좌우로 들어서고, 한 줄로 늘어선 촐 눌, 한 집안 부모형제 따로 살아가네. 집집마다 독특한 대문 사이 까만 돌담 둘러 있고, 뉘 집에서 들려오는 새각시 방아 찧는 묘음, 온갖 한과 시름 상사곡 되어, 애간장 끊는 소리 되어 들리고. 빛바랜 머리 노래진 해촌 아낙, 어려운 생계 때우려 전복 잡아, 법성포 군산에서 온 장삿배에 다가가, 쌀 흥정 마치고 얼굴 붉히며 돌아가네.
학식과 덕망이 높은 문인들이 뜻을 모아 품제(品題)되고 제영(題詠)됨이 당시 선비들의 작시법이다. 그렇게 빚어진 영주10경은 도 내외 지성인들이 일군 집단지성의 빛나는 산물인 셈이다. <문영택 (사)질토래비 이사장>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