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만 여건의 아픈 사연 '1366',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길
입력 : 2022. 08. 25(목) 13:30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 ① 1366제주센터 상담원
폭력 피해에 놓인 여성 가장 먼저 마주하는 상담원
긴급 상담·보호 등 지원… "우리 안 관심 이어지길"
[한라일보] 수많은 삶은 오늘도 흐른다. 특별한 것 없어도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모여 비로소 '우리'가 된다.

한라일보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는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삶을 마주하는 인터뷰 코너다. 첫 시작은 여성긴급전화 1366제주센터 상담원들이 연다. 센터가 문을 연 첫해부터 함께한 21년 경력의 상담원 2명(총괄팀장, 상담팀장)과 1366콜이 시범 운영되던 1998년 야간 상담 봉사로 인연을 맺은 18년 차 상담원(긴급지원팀장)을 만났다. 이번만큼은 인터뷰에 기본적으로 담겨야 할 이름, 인물 사진 등을 뺐다. 폭력 가해자에게 위협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1366제주센터의 한 상담원이 상담실에서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센터가 운영을 시작한 2001년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14만 3976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김지은기자
|1366제주센터, 올해 21주년… 한 해 상담 10배 늘어

'14만 3976건'. 2001년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여성긴급전화 1366제주센터의 상담 수다. 그 안에는 쉬이 더 깊은 고통을 부르고 끝 모를 피해에 놓인 여성들의 숱한 사연이 흐른다. 이를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게 센터 상담원들이다.

1366센터는 그 이름처럼 여성을 위한 긴급 전화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스토킹 등에 대한 긴급 상담과 보호 역할을 맡는다. 센터 상담은 1년 365일 24시간 가능하다. 배치 인력 16명 중 센터장 1명을 제외한 15명 모두 상담원이다. 제주자치도의 지원으로 중국어, 베트남어 통역사 2명도 배치돼 있다.

올해로 1366제주센터가 생긴 지 21년째다. 2001년 8월 전담 직원이 처음 배치되고 그해 10월 현판식이 열렸다. 운영 첫해인 2001년 705건이던 상담 건수는 2002년 1859건에서 2003년 2564건으로 점점 늘어 지난해 1만 670건으로 집계됐다. 피해자 선에서 덮고 숨겨왔던 폭력 피해가 더 많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엔 가정폭력을 당해도 한참을 참다 오는 분들이 많았어요. 아이가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결혼만 하면, 이렇게 말이죠. 그만큼 참다가 와서도 '조금만 더 참을걸'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래도 요즘엔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1366센터도 알려지면서 빨리 대응을 하는 분들이 많아졌지요." (총괄팀장)

폭력 피해 상담자의 나이대가 낮아진 것도 달라진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전만 해도 50대가 주를 이뤘지만 이제는 20대부터 70대까지 폭넓다. 상담팀장은 "예전과 다르게 요즘엔 20대 젊은 층의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폭력 피해 상담이 많아졌다"고 했다.

여성긴급전화 1366제주센터 홍보 현수막. 1366센터는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스토킹 등에 대한 긴급 상담과 피해자 보호 역할을 하고 있다. 관련 피해를 입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064-1366으로 전화하면 된다. 김지은기자
|'남의 집안일' 아닌 가정폭력… "이웃 신고도 늘어"

지난 20여 년간 폭력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도 조금씩 변해 왔다. 이전보다 폭력 피해자를 위한 법과 제도적인 뒷받침이 강화되면서다. 가정폭력 신고자의 신변이 보호되면서 이웃이나 주변 사람에 의한 신고가 늘었고 성매매피해자보호법, 성폭력처벌법, 스토킹처벌법 등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면서 '보호 사각지대'에 있던 피해자 지원이 가능해졌다고 센터 상담원들은 말한다.

"스토킹 피해나 디지털 성범죄는 분명 과거에도 있었어요. 그런데 명명이 안 되고 관련 법이 없다 보니 피해자 지원에는 한계가 있었죠. 경찰에 신고해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고, 가해자 분리조치가 안 돼 피해자가 오히려 찜질방이나 모텔, 지인 집을 떠도는 경우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법이 강화되면서 분명 이전과는 달라지고 있어요."(상담팀장)

폭력 피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은 피해자가 아픔에서 벗어나는 힘이 되고 있다. "1366센터는 경찰이 동시 출동을 요청하면 함께 현장으로 향해요. 피해자에게 긴급 보호가 필요하면 피난처에 올 수 있도록 하고 많이 다쳤다면 병원에서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의료비도 지원하지요. 이렇게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피해자에겐 굉장한 힘이 돼요. 폭력 피해를 입은 게 '내 잘못이 아니고, 내 개인적인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만큼 국가 차원의 촘촘한 지원이 중요해요.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은 폭력 피해를 밖으로 더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길이에요." (긴급지원팀장)

1366제주센터 곳곳에는 경찰의 긴급 도움을 요청하는 비상벨이 설치돼 있다. 여성폭력 가해자들의 위협은 센터 상담원들을 향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 기사에는 센터 상담원들의 이름과 얼굴 사진을 뺐다.
|끝없는 피해… 그래도 희망의 불씨는 살아난다

센터 상담원들에게도 폭력 피해를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가정폭력의 경우 쉽게 반복되고 성폭력, 학교폭력, 노인학대, 아동학대 등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총괄팀장은 "어떤 폭력에 노출되면 그것 하나로 끝나진 않는 것 같다"며 "폭력이라는 게 관계에서 일어나는 거다 보니 관계가 많이 깨지고 연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단절된다. 그러니 피해자가 힘을 찾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짐작할 수 없는 거대한 아픔에서도 희망의 불씨는 살아난다. 지금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긴급지원팀장)지만 상담원들이 현장을 지키는 이유다. "밤늦게 당직을 서다 보면 호텔이나 단란주점으로 출동하기도 해요. 그럴 땐 '나는 안 위험한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그런데 피해자를 긴급피난처로 안내해 상담하고 보호시설로 연계해 후속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서 보람을 느껴요. 우리 센터가 없었으면 그날 밤 다시 집으로 돌아가 또 다시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으니까요."(총괄팀장)

"피해자의 인생은 초기 지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오래전 밤 근무를 할 때 상담을 지원했던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있었는데, 센터 긴급피난처에서 보호시설로 연결했었죠. 그 이후에 삶은 저희도 몰라요. 근데 몇 년 후에 그분을 사회복지 현장에서 만나게 된 거예요. 그분도 저를 알아봤는지 서로 눈빛을 교환했지요. 이혼을 하지 않고 잘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상황이 안 되니 홀로서기를 했고, 공부를 다시 시작해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하고 있던 거였어요. 아픔을 넘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했어요. 저에게는 센터에서 계속 근무를 해야 겠다는 동기부여가 됐지요." (상담팀장)

상담원들은 폭력예방 교육과 캠페인 등도 잇고 있다. 긴급지원팀장은 "상담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가정폭력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강의를 하는 것도 상담원들의 역할"이라며 "폭력예방 교육, 대중강연회 등을 여는 것도 보람되다"고 했다. 최대한 신속히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도록 경찰과의 협업에도 힘쓴다. 해가 바뀔 때마다 도내 지구대와 파출소를 돌며 경찰과의 간담회를 여는 것도 그래서다.

1366제주센터에 붙어 있는 현수막. '당신이 침묵하면 폭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이 담겨 있다.
|피해자 향한 따가운 시선 여전… "주변에 관심을"

센터가 생기고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우리 안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상담팀장은 "본인 스스로 가정 폭력이나 아동학대 등을 신고하긴 어렵다.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아직도 폭력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이 있어요. 무언가 잘못한 게 있으니 맞는 거 아니냐는 거지요. 그러면 피해를 당해도 드러내지 못해요. 왜 맞은 사람이 부끄러워해야 할까요. 사회적인 시선이나 인식이 바뀌어야 신고가 더 늘어날 거예요."(긴급지원팀장)

"(피해자가) 신고를 못하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오늘 더 편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거기에서 머물 수밖에 없어요. 1366센터는 상담을 하는 곳이에요. 겁내지 마세요. 비밀이 보장되기 때문에 걱정말고 064-1366으로 전화하면 됩니다. '우리 집에, 우리 옆집에 이런 일이 있었다', 이렇게라도 말문을 열고 새로운 삶을 그려 봤으면 합니다." (총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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