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훈의 한라시론] 다시 일어나는 풀
입력 : 2023. 02. 02(목) 00:00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한라일보] 날도 추운데 차가운 북서풍이 분다. 거센 칼바람이다. 마른 풀들이 몸서리를 친다. 서걱서걱 아픈 소리를 한다. 첫 단락을 이렇게 시작하니 먹물 한량이 끄적거린 문장이 되었다. 마른 풀은 민중이요, 바람은 검찰독재라 쓰면 될 것을, 자기검열에 잔머리를 굴리며 에둘러 쓰느라 글 꼬락서니가 애면글면하다.

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따스한 생명의 순환을 이어가는 도리가 숨어있었다. 그래서 새봄을 마중하는 그런 기다림으로 추운 계절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다. 다섯 해 겨울은 그래왔다. 올 한반도의 겨울이 유달리 추운 것은 북극 한파가 덮쳐서만은 아니다. 나라의 근본이 망가지고 깨진 후과이기도 하다. 서민의 추위를 막아주는 바람벽이 무너진 탓이다. 일거리가 줄고 소득은 낮아지는데, 주거비와 생활비는 늘어만 간다. 수출은 물론 가계경제 여기저기가 낭패라 도처가 앓는 소리인데 검찰독재의 칼바람만이 거칠다. 민생에는 나 몰라라 하면서 공정과 법치를 내세워 반대편을 옥죄고 자기편 들기에 여념이 없다.

역사상 가장 보잘 것 없는 지도자를 뽑은 나라가 됐다는 비아냥거림에 '윤핵관'이라 불리는 권력자들의 행태도 이야깃거리다. 10·29이태원 참사 가족들을 대하는 태도가 그 본보기다. 참사의 원인 파악부터 책임자 처벌까지의 경과를 보면 이 참극이 어서 잊히기만을 바라는 모습이다. 대통령은 제대로 된 사과는 커녕 유족들의 어깨를 다독이거나 손 한 번 잡아주지 않았다. 세월호의 선례를 떠올리며 정권안보에 더 마음을 쓰는 때문일까. 시민언론 '민들레'에 대한 압수수색은 그래서 수상하다.

'이태원 희생자들을 잊지 말자고 한 죄'를 물으려 신생 인터넷 언론 '민들레'를 향해 겁박을 하고 있다. 정부여당의 의도를 거스르고 불복종 한 죄를 물으려는 초라한 공갈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권력을 부패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은 기본이고 국가와 사회의 중요 자산인 다양성 확보에도 언론의 자유는 매우 중요하다." 2022년 4월 6일 신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축사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후 공영방송 엠비시, 그리고 신생매체인 더탐사와 민들레에 가해지는 언론탄압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급기야 검찰독재와 전쟁위기 저지를 위한 '비상시국회의' 결성을 위해 민주원로들이 나섰다. 민주화를 위해 젊음과 인생을 송두리째 바쳤던 분들이 나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지금 백련산 자락으로 흘러 내려온 푸르른 겨울 솔숲을 바라보고 있다. 어제만 해도 하얀 눈이 쌓였던 솔가지 위로 여린 햇볕이 쏟아진다. 학창 시절 가슴을 울리던 노래, 상록수의 가사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그리하여 김수영 선생의 '풀'을 다시 읽는다.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독재자는 자유의 권리에 눈감고 굴복하는 대중 위에 군림한다. '풀'을 통해 시인이 본 것은 이에 다름 아닐 것이다.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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