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55] 3부 오름-(114)성산, 위가 평평한 마루
입력 : 2025. 12. 16(화) 03:00수정 : 2025. 12. 16(화) 06:27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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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쟁쟁한 선현들이 남긴 지명 해석이기 때문

성산, 성안에 사는 것 같은 느낌
[한라일보] 성산은 성산읍 성산리에 있다. 표고 179m, 자체 높이 174m다. 성산일출봉이라는 지명은 1997년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이라는 책에 표제지명으로 사용됐다. 그러면서 청산을 같은 지명으로 병기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려조 말기 삼별초 난으로 인해 제주섬에 들어온 김통정 장군이 '청산' 발치께에 토성(土城)을 쌓은 데서 '청산'을 성산봉(城山峰)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설과, 성산일출봉의 정상에 빙 둘러선 석봉(石峰)이 마치 산성(山城)과 같다 하여 성산봉(城山峰)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일출봉'은 영주십경(瀛州十景)의 하나인 성산일출(城山日出)에서 비롯돼, 최근에야 불리고 있는 이름이다."
김통정이 제주도에 상륙한 1271년에 이미 성산을 '청산'이라고도 불렀으며, '성산' 발치께에 토성을 쌓음으로써 성산봉이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과연 발치께가 어딘지 실제 여기에 토성을 쌓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내용이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을 원용했다. "성산, (일부 생략) 그 꼭대기는 평평하고 넓어서 200여 보나 되는데, 잡초가 숲을 이뤄 성안에 사는 것 같으므로 이름 지었다. 그 밑에는 땅이 넓이가 10리가량이나 된다." 이게 '성산'이라는 지명에 대한 지금까지 발견된 첫 기록이다. 이 글을 읽어보면 당시에 이미 성산(城山)이라는 이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꼭대기는 평평하고 넓어서 200여 보나 되는데, 잡초가 숲을 이루어 성안에 사는 것 같으므로 (성산이라고) 이름 지었다(광평이백여보, 잡훼성림, 유사성거, 고명; 平廣二百餘步, 雜卉成林, 有似城居, 故名)"이라는 구절에서 이 이름은 이미 지어져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고명(故名)이란 원래 이름이 그렇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지명은 고유어로 출발
이 저자는 '성산'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무엇인지 근거를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런 이름이 이미 있었고,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성안처럼 느껴져서, 아마도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라는 정도로 쓴 것일 뿐이다.
이후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쓴 남사록에는 '그 정상이 석봉으로 둘러싸여서 자연히 산성(山城)을 이뤘는데 성산이라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했다. 임제(1549~1587)는 '남명소승'이라는 책을 남겼는데 '그 위는 돌벼랑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마치 성곽과 같다'라고 썼다. 이 부분은 김오순의 탐라순력도산책을 인용했다.
이런 지명 해석은 그대로 받아 들일만 한가? 단지 쟁쟁한 선현들이 남긴 지명 해석이기 때문에 그대로 수용하란 것인가? 고대인들이 바라본 성산의 특징은 무엇이었을까? 이 오름은 한라산 정상에서도 보인다. 달랑쉬오름, 말미오름, 수산봉 등 일대의 오름들은 물론 그 외의 수많은 중산간 오름들에서도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어쩌면 발견되지 않았거나 이미 멸실되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어떤 기록이나 전승에서 성(城)과 관련된 내용을 접했다면 선입견으로 그렇게 보이게 마련이다.
사실 '성(城)'이란 한자어다. 고대인들이 고유어로 부르던 것을 기록자가 한자로 기록한 것이 아닌가. 또 한 가지는 오름을 밖에서 바라보고 그 특징을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지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만이 경험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지명으로 했을까 하는 점이다. "여보게, 정상에 올라가면 성처럼 외곽에 바위들이 빙 둘러쳐진 그 오름에 가볼까?" 이런 말을 한다면 소통할 수 있을까?
성산은 위가 평평한 오름
청산은 성산의 변음
외부에서 바라볼 때, 주변의 여러 오름과 구별되는 지명이 되려면 밖에서 보이는 특징을 반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본 기획을 통해서 봤듯이 오름의 지명은 대체로 이런 것이다. 성산오름은 특징이 여럿 있다. 성처럼 보이는 특징도 깎아지른 벼랑도 물론 있다. 그러나 두드러진 특징은 위가 평평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그렇다. 위가 평평한 지형은 대체로 '마르'라고 했다. 이 '마르'는 주로 '지(旨)'로 차자했다. 1576년 간행된 신증유합이라는 한문 입문서에는 '旨(지)'를 '마라 지'라고 했다. 지미오름, 문도지오름, 모지오름, 저지오름 등에서 보이는 '지'란 모두 '마라'를 나타내고 있다.
한편 '주(洲 혹은 州)', '자(子)'로도 차자했다. '영모르'의 별칭 영주산(瀛洲山 혹은 瀛州山), 모지오름의 별칭 모자악(母子岳), 손지오름의 별칭 손자봉(孫子峰)의 '자(子)'가 그것이다. 이 '지'와 '주' 그리고 '자'는 '자'로도 발음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마르'는 '미', '뫼'로 축약이 되고, 이는 '산(山)'으로 차자하는 관행이 있었다. '마르마르'의 차자 '수산', '달모르'의 차자 '토산' 같은 지명에서 확인된다.
성산(城山)은 위가 평평한 오름이니 '마르'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이 지명을 한자어 '자' 혹은 '자'를 거쳐 지명을 2~4음절로 부르는 관행이 정착되면서 '자마르'라 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이후 한자로 기록하면서 '자'는 '성(城)'으로, '마르'는 '산(山)'으로 차자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성산'이란 지명이 완성되는 것이다.
한편 청산(淸山 혹은 靑山)이란 숲이 우거져 푸른 산이라는 뜻이라고 풀이하면서 별칭처럼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성산'의 격음화 현상으로 생겨난 변음으로 보인다. 제주어에서 이런 현상은 비교적 흔하다. 병을 펭, 정동(식물)을 청동, 재촉을 체촉, 조락지다를 초락지다, 보따리를 포따리 하는 식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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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성산은 성산읍 성산리에 있다. 표고 179m, 자체 높이 174m다. 성산일출봉이라는 지명은 1997년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이라는 책에 표제지명으로 사용됐다. 그러면서 청산을 같은 지명으로 병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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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 일출봉이라고도 불리는 오름이다. 대수산봉에서 촬영. 김찬수 |
김통정이 제주도에 상륙한 1271년에 이미 성산을 '청산'이라고도 불렀으며, '성산' 발치께에 토성을 쌓음으로써 성산봉이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과연 발치께가 어딘지 실제 여기에 토성을 쌓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내용이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을 원용했다. "성산, (일부 생략) 그 꼭대기는 평평하고 넓어서 200여 보나 되는데, 잡초가 숲을 이뤄 성안에 사는 것 같으므로 이름 지었다. 그 밑에는 땅이 넓이가 10리가량이나 된다." 이게 '성산'이라는 지명에 대한 지금까지 발견된 첫 기록이다. 이 글을 읽어보면 당시에 이미 성산(城山)이라는 이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꼭대기는 평평하고 넓어서 200여 보나 되는데, 잡초가 숲을 이루어 성안에 사는 것 같으므로 (성산이라고) 이름 지었다(광평이백여보, 잡훼성림, 유사성거, 고명; 平廣二百餘步, 雜卉成林, 有似城居, 故名)"이라는 구절에서 이 이름은 이미 지어져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고명(故名)이란 원래 이름이 그렇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지명은 고유어로 출발
이 저자는 '성산'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무엇인지 근거를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런 이름이 이미 있었고,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성안처럼 느껴져서, 아마도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라는 정도로 쓴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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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은 위가 유난히 평평한 오름. 선흘 민오름에서 촬영. 김찬수 |
이런 지명 해석은 그대로 받아 들일만 한가? 단지 쟁쟁한 선현들이 남긴 지명 해석이기 때문에 그대로 수용하란 것인가? 고대인들이 바라본 성산의 특징은 무엇이었을까? 이 오름은 한라산 정상에서도 보인다. 달랑쉬오름, 말미오름, 수산봉 등 일대의 오름들은 물론 그 외의 수많은 중산간 오름들에서도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어쩌면 발견되지 않았거나 이미 멸실되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어떤 기록이나 전승에서 성(城)과 관련된 내용을 접했다면 선입견으로 그렇게 보이게 마련이다.
사실 '성(城)'이란 한자어다. 고대인들이 고유어로 부르던 것을 기록자가 한자로 기록한 것이 아닌가. 또 한 가지는 오름을 밖에서 바라보고 그 특징을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지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만이 경험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지명으로 했을까 하는 점이다. "여보게, 정상에 올라가면 성처럼 외곽에 바위들이 빙 둘러쳐진 그 오름에 가볼까?" 이런 말을 한다면 소통할 수 있을까?
성산은 위가 평평한 오름
청산은 성산의 변음
외부에서 바라볼 때, 주변의 여러 오름과 구별되는 지명이 되려면 밖에서 보이는 특징을 반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본 기획을 통해서 봤듯이 오름의 지명은 대체로 이런 것이다. 성산오름은 특징이 여럿 있다. 성처럼 보이는 특징도 깎아지른 벼랑도 물론 있다. 그러나 두드러진 특징은 위가 평평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그렇다. 위가 평평한 지형은 대체로 '마르'라고 했다. 이 '마르'는 주로 '지(旨)'로 차자했다. 1576년 간행된 신증유합이라는 한문 입문서에는 '旨(지)'를 '마라 지'라고 했다. 지미오름, 문도지오름, 모지오름, 저지오름 등에서 보이는 '지'란 모두 '마라'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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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城山)은 위가 평평한 오름이니 '마르'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이 지명을 한자어 '자' 혹은 '자'를 거쳐 지명을 2~4음절로 부르는 관행이 정착되면서 '자마르'라 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이후 한자로 기록하면서 '자'는 '성(城)'으로, '마르'는 '산(山)'으로 차자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성산'이란 지명이 완성되는 것이다.
한편 청산(淸山 혹은 靑山)이란 숲이 우거져 푸른 산이라는 뜻이라고 풀이하면서 별칭처럼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성산'의 격음화 현상으로 생겨난 변음으로 보인다. 제주어에서 이런 현상은 비교적 흔하다. 병을 펭, 정동(식물)을 청동, 재촉을 체촉, 조락지다를 초락지다, 보따리를 포따리 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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