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목요담론] “자식들한테 우던 닮았다고 하지 마라”
입력 : 2026. 02. 12(목) 03:00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한라일보] "자식들한테 우던 닮았다고 하지 마라". 이 말은 1962년에 제주도에서 첫 여성 주례를 한 고수선 여사의 말이다. '우던'은 '족속 또는 같은 종류의 물건 따위'를 일컫는 제주어다. '무사 그 우던덜 보믄 모르크라'는 ' 왜 그 족속들 보면 모르겠어' 라고 하는 것처럼, 부정적이거나 성질이 못됐을 때 사용하는 말투다. 당시만 해도 남성 우위 시대여서 여성의 사회참여가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성여학교 1회 졸업생인 고수선(1898~1989)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가 투옥됐으며, 제주여자청년회 초대 회장에 이어 제주 최초 여의사 등록, 제주도의회 초대 도의원 선거와 제3대 국회의원 선거 첫 출마 등 여성 권익 운동에 앞장섰다. 특히 선거 때에는 '암탁(암탉)이 울민 집안이 망한다'말에 강하게 분개하며, '남자는 세계를 움직이지만, 그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라며 항변했다.

주례는 결혼식을 앞둔 부부에게 큰 고민거리였다. 보통 학창 시절의 은사님 또는 사회적 지위나 덕망이 높은 남자를 모셨다. 주례사를 준비하려면 신경을 써야 할 일이 많아서 흔쾌히 승낙하지 않아, 때론 일면식도 없는 분이 주례를 대행하기도 했다. 시대 흐름에 따라, 가문의 위엄과 체면을 중시하던 결혼식 풍습도 사라지고 있다. 주례 대신에 당사자 간에 고백과 약속을 낭독하거나, 부모가 주례사로 당부한다. 사회자의 역량에 따라 진지한 분위기를 눈물 대신에 웃음꽃으로 가득 피우다 보니, 뱃속을 채우기보다 결혼식 풍경을 스마트폰에 담느라 바쁘다.

결혼식뿐만 아니라 명절 풍습도 확 바뀌었다. 한때 오일장에서 가장 북적이던 곳이 옷가게였다. 음식을 장만하는 일보다 멩질옷(명절옷)을 챙기는 게 우선이었다. 오일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몇 달 전부터 옷감을 구하고 물들여야 했다.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게 조상에 대한 예의인 동시에 아이들의 기십을 살리는 일이기도 했다. 고운 옷을 차려입고 친척 어르신께 세배드리고, 동네마다 합동 세배를 올리기도 했다. 좋은 옷과 음식으로 한 해를 맞이하는 명절이기에, 누구나 그리고 어느 집안이든 새해맞이를 명심해야 했다.

엄동설한에 까치와 까마귀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들에게 오해를 산다. 생존을 위한 행동도 보는 관점이나 시기에 따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결혼식과 명절도 지나치게 전통을 강조하면, 공감 대신에 허례허식 같다고 핀잔을 듣게 된다. 부부간의 맞절과 조상이나 어르신께 드리는 세배는 서로에게 감사를 표함과 동시에 싸우지 않고 오손도손 잘 살겠다는 약속이다. 새해를 맞아 끼리끼리 모여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극정성을 보인다고 길바닥에서 절까지 할 태세이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면 아무나 해도 괜찮다고 여기다 보니, 고수선 여사와 닮은 위인을 뵙기가 쉽지 않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명절날에 큰소리 대신에 작은 웃음소리로 꽉 채운 풍속이 회복되길 빌어본다. <김완병 제주학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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