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126)그림자들-이 원
입력 : 2026. 03. 31(화) 03:00
황학주 hl@ihalla.com
[한라일보] 바닥은 벽은 죽음의 뒷모습일 텐데 그림자들은

등이 얼마나 아플까를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무용수들이 허공으로 껑충껑충 뛰어오를 때 홀로

남겨지는 고독으로 오그라드는 그림자들의 힘줄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한 사내가 또는 한 아이가 난간에서 몸을 던질 때

미처 뛰어오르지 못한 그림자의 심정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몸은 허공 너머로 사라졌는데 아직 지상에 남은

그림자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할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삽화=배수연


질문의 일종이지만, 인간 존재의 유한성은 '고독'의 자기 확인에서 찾을 수도 있다. 인간이 실용성 적은 제 그림자와 늘 조우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 증거로 제출할 수 있다. 인간의 존재 양상은 그림자의 존재 양상과 일단 닮지 않았는가. 그림자가 우리 곁에 붙어 있듯이 우리는 우리의 몸이 일을 당할 때의 심정과 붙어 있으며, 그 심정은 타자의 몸이 아픔을 당할 때 얼마나 그 곁에 붙어 있는가에 따라 '교감'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고독은 교감의 틈만큼 자리한다. 또한 우리 사회의 내적 붕괴만큼 그림자는 짙게 드리운다. "한 사내가 또는 한 아이가 난간에서 몸을 던질 때 미처 뛰어오르지 못한 그림자"는 "무용수들이 허공으로 껑충껑충 뛰어오를 때 홀로 남겨지는 고독"과 접속하며, 그 무력감은 인간 존재의 유한성에 다름 아니다. 어쩌면 죽음은 영원한 고독이거나, 고독한 영적 쇠진에서의 해방일 것이나 이 다른 존재로의 아픈 열림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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