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없던, 지금 여기 제주의 우리가 던지는 질문들
입력 : 2026. 04. 02(목) 17:40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주말, 여기] 탐미협 2026 4·3미술제 '파(波)의 질감'
"4·3은 과거의 사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문제다"
36명 참여 이아·산지천갤러리 등서 오는 18일까지
예술공간 이아에서 열리고 있는 4·3미술제. 양미경의 '미여지'(오른쪽)와 정용성의 '딸딸이 운전도'. 진선희기자
[한라일보] 그들은 제주 섬을 걸었다. 제주 자연과 삶,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위로와 애도를 체험했다. 여섯 차례에 걸친 답사 등을 영상에 담은 임흥순의 '걷는 애도'다. 그도 제주 섬을 걸었다. 사나운 세월을 견뎌낸 이들이 걸어온 길을 맨발로 딛는다. 배효정의 영상 '한때 노래였던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다.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시간의 층위 속에 우리가 위치한 적은 없다. 동시대에 또 다른 4·3의 현장이 발생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 자리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2026 4·3미술제 전시장에 놓인 낱장의 홍보물에 적힌 글이다. "4·3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다." 올해 또다시 4·3미술제라는 막을 올린 미술인들은 이 말을 새기며 무뎌진 감각을 깨우려 했다.

예술공간 이아에 전시 중인 임흥순의 '거믄 얼굴' 사진 연작, '걷는 애도'.
산지천갤러리에 전시된 김영훈의 '별진밭'.
탐라미술인협회가 주최하고 4·3미술제조직위원회가 주관하는 4·3미술제 '파(波)의 질감'이 지난달 26일부터 제주시 원도심에 자리한 예술공간 이아, 산지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참여 작가는 36명. 2년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전시로 올해는 도내 작가를 중심으로 4·3의 정신과 감정을 지금 여기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내놨다. 특정 서사를 제시하기보다 4·3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를 고민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흑백 영상 속 중산간의 눈 내린 풍경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어지는 현재의 삶(박한나의 '흰 시간')에 닿는다. 그러나 겹겹이 쌓인 눈 아래엔 마디마디 스며든 고통의 흔적(박길주의 '작고 연약한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행위')이 있다. 화면 속 말(馬)은 다가갈 것인가, 물러설 것인가(오지원의 '어디에 설 것인가') 묻는가 하면 분명치 않지만 어떤 중얼거림이 있는 곳(양미경의 '미여지')으로 이끈다. 야만의 시대에 진실을 밝히려 사력을 다했던 생존자(김영훈의 '별진밭') 너머에 벼리고 벼리고 다시 벼린 뒤 남은 서슬퍼런 감각(조이영의 '벼리고 벼린')이 있다.

주최 측은 4·3이 단지 죽음과 희생이라는 비극성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려 했던 주체적 선택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4·3의 본질에 다가간다는 것은 모든 생명의 존엄을 위협하는 구조에 저항하는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했다. 질문이 사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변죽을 울리겠다는 다짐은 상투성을 경계하겠다는 의지일 게다.

전시는 오는 18일까지(월요일 휴관). 개막 행사는 3일 오후 4시 예술공간 이아. 오후 2시부터는 전시장 투어가 예정됐다.



■한라일보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01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문화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