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여성들의 주요한 기억방식이었다”
입력 : 2025. 10. 17(금) 17:40수정 : 2025. 10. 17(금) 21:47
양유리 기자 glassy38@ihalla.com
제주4·3 제77주년 기념 학술대회
‘국가폭력과 기억·치유·평화’ 개최
성폭력 피해자 낙인 두려워 침묵
“비가시화된 ‘기억의 문’ 열어야”
17일 오후 제주경제통상진흥원 2층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제주4·3 제77주년 기념 학술대회.
[한라일보] 제주4·3의 공식적인 기억 밖에서 비가시화된 ‘여성들의 기억’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는 17일 오후 제주경제통상진흥원 2층 대회의실에서 제주4·3 제77주년 기념 학술대회 ‘국가폭력과 기억·치유·평화’를 개최했다.

이날 송혜림 연세대학교 박사는 ‘4·3 포스트메모리 연구에 대한 제언: 여성 증언과 여성 재현의 어긋남으로부터’를 주제로 발표했다.

포스트메모리란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이전 세대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과거사를 재구성하는 등 세대를 넘어 전승되는 기억의 형태를 말한다.

송 박사는 “4·3에 대한 역사 왜곡과 폄훼가 지속되는 가운데 후세대의 역사 인식과 기억 계승은 중요한 과제가 됐다”며 “압도적 규모의 폭력은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듯 보이나 실상은 성차화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성폭력 피해가 잘못된 품행이나 행실의 문제로 비난받아왔던 역사 속 여성들은 ‘낙인’이 두려워 침묵을 택해왔다”면서 다큐멘터리 영화 ‘목소리들’의 사례를 설명했다.

송혜림 연세대학교 박사 졸업생.
그는 “영화 속에서 노인들에게 ‘성폭력’ 문제를 묻자 “그런 일이야 횡행했지만 누가 골아져(말하나)”, “그런 일 당해났댄 말은, 그건 목숨이 끊어져도 안곱니다(안 말합니다), 여자로서는” 등의 답변이 돌아왔다”며 “횡행했던 성폭력에도 불구하고 왜 그것이 침묵돼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또 “인간이 한 사건을 기억하고 이를 회상하며 발화할 때 이 과정은 복잡한 역학 속에서 일어난다”며 “내 말이 곡해돼서 들릴 것인가, 그로 인해 내가 얻을 피해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이에 따라 기억은 조작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포스트메모리는 지금까지 온당한 ‘말의 자리’를 갖지 못한 존재에게 기억의 문을 여는 작업이어야 한다”며 “이러한 실천이 폭력의 희생자들과 살아남았지만 차라리 침묵함으로써 삶을 지켜냈던 생존자들을 늦게나마 기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송 교수 발표와 더불어 정용숙 춘천교육대학교 교수의 ‘경합적 기억과 평화의 딜레마: 유럽 기억 문화가 직면한 도전과 실천적 모색’, 김희선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의 ‘4·3트라우마 치유와 제주 무속’, 최호근 고려대학교 교수의 ‘증인 없는 시대의 4·3교육: 스토리 기반 평화교육의 길을 찾아서’ 발표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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