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감귤밭 폐타이벡, 왜 다 ‘소각’해야 하나요
입력 : 2023. 01. 26(목) 17:10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도내 감귤밭에 덮었다 버려지는 타이벡
재활용 불가능해 거의 대부분 소각 처리
제주 스타트업서 친환경 상품 부활 시도
“폐타이벡 재활용 시도 이어질 수 있길”
제주도내 감귤밭에 버려진 폐타이벡. 사진=푸른컵
[한라일보] '친환경 타이벡 가방', '타이벡 에코백'. 온라인에서 ‘타이벡’을 검색해 보면 ‘친환경’, ‘에코’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타이벡’과 ‘친환경’, 이 둘의 조합은 맞는 말일까.

타이벡을 친환경이라고 하는 데는 '100% 재활용'이 가능해서다. 특수 부직포 소재인 타이벡은 별도의 화학첨가물 없이 고밀도 폴리에틸렌으로만 만들어진다. 거기에 무게는 가볍고 내구성, 방수 등의 기능도 있어 '고기능 친환경’이라는 더 그럴싸한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그럼 타이벡은 ‘진짜’ 친환경적일까. 지금처럼 끊임없이 '새것’을 찍어낸다면 결코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최근 타이벡이 친환경 소재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이 역시 결국엔 석유화학 공장에서 만든 플라스틱입니다. 계속해서 새 타이벡 원단을 사용해 제품을 생산한다면 필연적으로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되는 거죠.” 제주 스타트업 ‘푸른컵’ 대표 한정희(44) 씨가 말했다. 그가 '폐타이벡'을 다시 쓰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한정희 푸른컵 대표가 도내 한 감귤밭에서 폐타이벡을 수거하고 있다. 사진=푸른컵
감귤밭 폐타이벡으로 '자원 순환'을 꿈꾸다

그렇다면 새것이 아닌 쓰다 버려진 타이벡으로는 안 될까. 지난 2017년 제주에 정착한 이주민이기도 한 한 대표는 감귤의 당도를 높이기 위해 쓰이는 타이벡을 떠올렸다. 감귤밭에 깔렸다 그냥 버려지는 것을 볼 때마다 그 자원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 왔던 터였다.

"친환경 바람이 불면서 온라인에선 ‘친환경 타이벡’으로 만들었다는 에코백이 굉장히 잘 팔리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쪽에선 많은 양의 타이벡이 한 번 쓰였다 버려지고 있는 거죠. 새 타이벡으로 새 제품을 찍어내는 것보다 폐타이벡을 재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제주에서도 한 해 버려지는 폐타이벡이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타이벡은 도내 감귤밭의 토양 피복재로 쓰이는데, 올해 새롭게 깔리는 면적만 해도 170㏊가 넘는다. 올해 예정된 감귤원 토양피복 재배 지원 면적은 제주시 31.2㏊, 서귀포시 144㏊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용되는 타이벡은 보통 2년 안팎이면 쓰임을 다해 버려진다. 이후 재활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농가마다 배출한 타이벡 대부분이 소각되고 있다. 모종판, PE파이프, 비료포대, 영양제 병 등의 영농폐기물이 재활용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서귀포시 관계자는 "작년 한 해 지역 농가에서 중간 집하장으로 배출한 타이벡과 보온커튼, 부직포, 모종포트 등의 폐기물이 650톤"이라며 "이 중 상당량이 폐타이벡인데, 현재는 재활용이 어려워 소각장으로 반입해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푸른컵이 폐타이벡으로 만든 가방. 사진=푸른컵
'멋스러운 원단'으로 재생… 가방 등 상품 개발도

한 씨가 이끄는 푸른컵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폐타이벡 재사용 '실험'에 나섰다. 한국환경산업협회의 ‘새활용 산업’ 육성 지원을 받으면서다. 같은 해 농가 등을 다니며 감귤밭 1만800㎡(약 3300평)를 덮었던 타이벡을 수거했다.

그는 우선 제품 원단으로서의 활용 가능성에 주목했다. 농가에서 짧게는 몇 개월 쓰다 버려지는 타이벡도 있는 만큼 충분히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문제는 오염이었다. 폐타이벡은 흙과 작물 찌꺼기가 눌러 붙은 채로 수거돼 지금까지 상품화나 재활용된 사례가 드물었다는 게 한 대표의 설명이다.

그 만큼 세척이 중요했다. 이 문제는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로 풀어 나갔다. 푸른컵은 이미 2021년부터 일회용컵을 대체하는 '다회용 텀블러 공유 사업'을 하고 있다.

한 대표는 "그동안 이런저런 방법으로 컵을 씻으며 쌓아온 세척기술로 오염된 폐타이벡을 새것처럼 되살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깨끗해진 폐타이벡은 제주대학교의 잔류 농약 검사도 식품 수준 이하의 수치로 통과했다.

재생된 폐타이벡은 친환경 상품을 만드는 원단으로 거듭났다. 이를 활용해 에코 가방과 현수막, 배너 등이 만들어졌다. 지난해 12월 제주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친환경선박박람회에선 폐타이벡으로 제작된 기념품이 대량 납품돼 선보이기도 했다.

"실제 (폐타이벡으로) 만든 제품을 보면 아실 거예요. 이게 진짜 헌것인가 할 정도로 새것 같은 것도 있죠. 중간 중간 얼룩이 남거나 해어진 부분을 기운 자국이 있기도 하지만 그게 오히려 멋스럽기도 하고요."

푸른컵이 폐타이벡으로 만든 배너. 사진=푸른컵
다시 써도 또 버려질 수 있어… '재사용' 고민 여전

감귤밭 폐타이벡을 '친환경 굿즈(상품)'로 만드는 시작을 열었지만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 방식으로는 재활용 가능한 양이 미미한 데다 한 번 쓰고 또 버려야 하는 상황과 마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안 만들 순 없고, 만들자니 버리는 게 부담이 되는 배너와 현수막을 폐타이벡으로 제작했지만 결국에는 이것도 쓰고 나면 버려지는 문제가 있다"며 "이것 역시 다시 사용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양의 폐타이벡을 쓸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원 순환 솔루션을 개발해 제공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폐타이벡을 재활용하는 시도가 이어지려면 행정적 지원 등도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씨는 "많은 타이벡이 버려지고 있는데도 저희 같이 폐타이벡을 자원으로 활용해 보려는 작은 스타트업은 소재를 구하는 것도 보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며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푸른컵은 2021년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으로 선정된 창업팀이다. '제주의 친환경 스타트업'이라는 소개처럼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원 순환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그 첫걸음이 제주 여행객 등에 일회용컵을 대신해 쓸 수 있는 다회용컵(텀블러)을 빌려주는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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