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39)안덕면 대평리
입력 : 2023. 05. 12(금) 00:00수정 : 2023. 05. 14(일) 16:20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천혜의 비경 속에서
공존의 아름다움 피어나


[한라일보] 원래 지명은 난드르. 제주어로 '나간' '밖으로 향한'의 의미를 가진 '난'에 들판을 뜻하는 드르가 붙어서 마을 이름으로 불러왔다. 그러다가 한문으로 마을 이름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되니, 큰 들판이라는 의미로 大坪里라고 했다. 마을 어르신들이 전하는 설촌의 유래는 300년 정도 전에 창천리에 살던 양기성이라는 분이 처음으로 바닷가 들판 지역으로 내려와 움막집을 짓고 살면서 농경과 어로를 기반으로 하는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동쪽은 예래마을과 경계를 이루고 북쪽으로는 군산이 솟아있으며, 서쪽으로는 월라봉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창고천 냇물을 서쪽 안덕계곡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들었다. 그 결과 안덕에서 대평리로 들어오는 길은 제주의 어느 지역의 길보다 독특하다. 얼핏 강원도 산골짝을 지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서쪽 해안가에 솟아오른 융기절벽인 박수기정은 그 웅장함이 대평리의 모습을 절경으로 이끄는 첨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도 마을 주민들이 부르는 지명들이 정겹다. 쐘목, 꿩망동산, 개나리모루, 당캐, 마궁굴, 홀애미덕, 오짓개, 소기왓, 애기업개돌 등 조상들의 언어문화 속에 짙게 깔린 정서를 이야기해 준다.

대평리는 제주에서 가장 독특한 지형적 특징을 가진 곳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가장 제주를 닮지 않은 마을이다. 그러한 생각이 무리가 아닌 것이, 올라가다가 막혀버린 당쿨천과 마궁굴 두 개의 계곡이 마을 뒤편에 위치해 있고, 마을 진입로가 높은 지대를 올라가서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이곳 빼고는 없다. 땅은 좁은 반면 바다는 넓다. 마을에서 가시권에 들어오는 바닷가에서부터 박수기정을 지나 화순화력발전소 부근까지가 대평리 해녀들이 대대로 해상권을 행사하는 바닷가다.

대평리 주민들이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정신적인 구심점에는 서씨 성을 가지고 살았다는 할망당이 있다. 역사적 사실은 조슨다리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서씨할망이 당차고 리더십이 있어서 군산부근으로 난 길로 돌아서 화순지역까지 가야하는 힘들고 비효율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가산을 털어 석수장이들을 불러들여 암벽지대를 쪼아서(제주어로 '조슨'가파른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공사가 완공되고 대평리 사람들은 바깥나들이가 이전보다 엄청나게 수월해졌다고 전해지는 것이다.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당을 만들어 당신(堂神)으로 모셔오고 있다. 지금도 중요한 마을 대소사나 마을 단위로 밖에 나가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마을 임원들이 할망당에 가서 정성스럽게 제사를 올리고 마을 일에 임한다고 하니 마을공동체의 정체성이 그대로 간직된 마을. 서씨 할망에게서부터 내려온 진취적인 개척정신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암암리에 흐르고 있음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현재의 모습은 눈으로 확인하는 그대로다. 외형적인 변화는 외부에서 마을에 이주해 생업의 터전을 마련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는 모습.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평리처럼 단기간에 급격한 변화를 접하는 마을은 흔치 않을 것이다.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정신을 바짝 차리려는 몸부림이 느껴진다. 천혜의 풍광을 지키면서 이를 활용해 다양한 마을공동체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각오가 역력하다. 관광자원으로서의 놀라운 가치는 다른 분야에서 거대한 역기능을 불러올 수 있음을 간파하고 모두 함께 지혜를 모아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현재의 상황에 이르는 지난 과정 속에서 행정이 보여준 안일함들이 난개발에 가까운 무계획적인 시행착오를 저질렀다는 불만과 탄식에 묶여 있을 겨를이 없다. 극복은 과거를 극복하기에 앞서 현재를 극복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마을공동체가 보유하고 있는 진정한 부가가치를 외부에서 유입된 다양한 분야의 사업공간들이 인정하고 함께 노력해나갈 때, 공존의 대가는 크게 분배될 수 있으리니.

필자는 대평리의 안온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 따사로운 느낌이 좋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고. 문제는 이 귀중한 자원에 대해 발전적 유지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끊임없는 고민이 더 큰 희망의 원천이다. 서씨 할망의 극복 정신이 있다면 보다 현명한 선택과 실천으로 융합상생이 가능하다. <시각예술가>





박수기정의 오후
<소묘 담채 79㎝×35㎝>


바다색으로 그리고 싶었다. 땅속에서 융기해 솟아나니 바다였을 터이니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사람들은 천혜의 비경이라고 일컬으며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건만 정작 저 벽의 아래를 보면 풍화에 시달리며 조금씩 조금씩 차츰차츰 몸의 한 부분을 바다로 털어내고 있다. 그리는 내내 원래의 모습에서 얼마나 뒤로 물러났는지 궁금하였다.

사실적인 모습 못지않게 가장 근본적인 이미지를 찾으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바다와 잇닿은 대평리의 지리적 환경을 보여주는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푸른 파도와 주고 받아온 이야기들이 바다에 동화되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욕심에서다. 종이만 물드는 것이 아니라 바위도 파도라고 하는 시간성에 물들어간다. 칠해진 것과 물든 것의 차이는 크다. 칠해진 것은 표면이지만 물든다는 것은 깊은 속까지 젖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이지 않는 그 의지의 세계에 젖어들어 있을 바다색을 끄집어내어 회화작업이라고 하는 평면이미지에 도출시킨 것이다. 오후의 햇살을 받은 절벽이 거대한 명암 심포니를 연주하고 있다. 장엄한 곡이 들려오는 그런 분위기를 떠올리면서. 다양한 악기와 숫자적으로도 엄청난 규모의 웅장한 울림이 시각적으로 펼쳐지는 곳. 영겁의 세월을 노래하는 찬연함이 파도소리와 함께 감동을 선물한다. 바위절벽의 거친 느낌을 위해 선택한 소묘 방식에 담채를 더해 얻고자 하는 바닷가 풍광을 획득하였다. 의도한 바를 모두 충족하지 못하였다고 의미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없음에.





난드르의 어떤 나무
<수채화 79㎝×35㎝>


동쪽 하늘은 옅은 구름들이 잔뜩 포진해 펼쳐져 있고, 그나마 서쪽 하늘은 햇살이 크게 열렸다. 바다와 농경지가 잇닿은 마을. 난드르 사람들의 불굴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한 소재로 저 나무 한 그루를 선택하였다. 섬 제주에서도 적도와 더 가까운 남쪽 해변. 북쪽은 월라봉과 군산이 막아줘서 온화해보이나 남쪽은 바로 바다이니 어쩌랴. 남풍이 바다를 훑으며 몰아치는 날에는 그대로 감당해야 한다. 저 나무가 묘목 정도이던 시절부터 끊임없이 바람에 시달렸음을 보여주는 기울어짐. 그러나 결코 쓰러지지 않는 결기가 느껴져서 그렸다. 보라! 저 고난 속에서도 가지 풍성하게 뻗고, 건강한 초록 잎을 무성하게 키워내는 옹골찬 기백을. 제주인의 끈질긴 생명력과 의지를 보는 듯하다. 또한 집 남쪽에 버티고 있어서 방풍림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풍토성이 생성시킨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그림은 또 하나의 창조. 나무의 불안한 모습이 던져주는 구도상의 배치를 나름대로 치밀하게 비례로 스며들게 해 그렸다. 독특한 원근법이 발생된 이유는 주인공 나무를 부각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다. 집과 나무와 밭. 하늘 아래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너무도 식상한 만남이지만 반복된 환경이 생성시킨 절묘한 변화는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의미가 크다. 밭 흙은 말라서 습기가 전혀 없어 보이나 오히려 광선의 눈부신 강도를 표현해줄 수 있어 고맙다. 저기 멀리 원경에 있는 나무 또한 오랜 기간 바람과 싸워 기울기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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