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수염에 대한 단상
입력 : 2026. 07. 10(금) 01:00
정만호 hl@ihalla.com
[한라일보] 태종의 외손자인 철부지 권총(權聰)이 졸고 있는 노신(老臣)의 수염을 노리개 칼로 잘라 버렸다. 국법이 준엄하여 나이 어린 권총은 남대문 밖에 수년간 감금되었다. 을미개혁 교서 중, 단발령은 신체·효를 중시하는 ‘신체발부 사상’의 유교적 가치관과 충돌하면서, 유림을 비롯한 국민들의 저항이 요원의 불길 같았다.

고대 그리스인은 수염을 풍성하게 길렀고, 로마인은 대체로 깔끔하게 면도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시지프스가 죽은 뒤 지옥에서, '산 정상까지 바위를 밀어 올리지만, 정상에 닿기 직전 바위가 굴러 떨어지고 이 같은 일을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탈모에는 가발을 권장하는데, 수염은 호불호가 갈린다. 수염은 하루에 0.3~0.5㎜ 자란다. 빨리 자라면 매일 조석으로 면도하고, 태만하면 자기 관리가 부족해 보인다. 중·고교 교칙으로 시작된 수염과의 전쟁은 '시지프스의 바윗돌 굴리기 형벌'인가.

황혼기에도 피부 트러블, 결벽증에 시달린다. 수염과 수 십 년을 싸워온 노익장들이 새삼 레이저 제모를 할 수도 없고.

이제 그리스식이냐 로마식이냐, 개인 취향을 따른 결정에 묵묵함이 좋지 아니한가. 논어명언 한 구절을 인용한다. "나이 일흔에는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從心所欲不踰矩)" <정만호 한라일보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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