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51] 3부 오름-(110)볼레오름과 보리오름
입력 : 2025. 11. 18(화) 03:00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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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레오름엔 볼레낭, 보리오름엔 보리가 난다?

벼랑이 있는 볼레오름
[한라일보] 한라산 영실탐방로의 숲길을 지나면 하늘이 열리면서 시야가 트인다. 숨이 가쁘다. 뒤를 돌아보면 드넓은 숲과 오름과 해안과 바다가 들어온다. 가장 가까이 보이는 오름이 볼레오름이다. 서귀포시 하원동 산1-1다. 표고 1374.2m, 자체 높이 104m다. 이 오름엔 북서쪽으로 크게 벌어진 분화구가 있다. 오름 정상에서 화구바닥에 이르는 사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남서쪽으로는 커다란 계곡이 만들어져 있는데, 특히 정상 부분은 깎아지른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동쪽 기슭에는 샘이 솟는다.
이 오름이 유명하게 된 건 존자암이라는 절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 존자암은 제주도에 세 성이 처음 일어날 때 창건돼 세 읍이 정립한 뒤에까지 오랫동안 전해왔으니, 비보소이자 세상에 이름이 난 지 오래이다." 현금순이 쓴 제주불교사란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1507년 홍유손이란 분이 쓴 '존자암개구유인문'이란 글의 일부다. 다시 복원할 것을 권하는 글로 존자암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이후 계속 인용해 지금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존자암이 탐라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철석같이 믿게 된 것은 이 기록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 있는 부도 탑의 이름을 세존사리탑이라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오름의 지명은 1653년 탐라지에 포애악(浦涯岳)이라고 한 기록을 비롯해 여러 고전에 표기된 바 있다.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에는 볼레오름으로 표기했다. 이렇게 표기한 지명은 포애악(浦涯岳), 볼라악(乶羅岳), 보라악(甫羅岳), 포라악(鋪羅岳), 불래악(佛來岳), 볼레오름 등 모두 여섯 가지가 된다.
한자를 소리글자로도 활용
이 지명들은 볼레오름 혹은 볼래오름의 음을 그대로 써 보고자 차용한 한자 지명이다. 이 한자들의 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소리 나는 그대로 표기하기 위해 동원했을 뿐 뜻글자로서의 한자를 동원한 것이 아니다. 즉, '벼라', '비러', '비레', '보레', '볼레' 등으로 변천을 겪은 '벼랑'의 변음들이다. 그러니 이 지명들은 벼랑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한자는 뜻글자라는 집착을 떨치지 못한 채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갖다 붙인 것이 널리 유포되고 있는 존자암 관련 내용들이다. 발음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보려고도 했다. 위의 한자 지명에 나오는 포애(浦涯), 볼라(乶羅), 보라(甫羅), 포라(鋪羅), 불래(佛來) 등은 '볼레'라는 음만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이것이 볼레나무라는 취지로 썼다는 근거는 없다.
"'볼래'는 보리수의 제주어이다. 이 오름에 '볼래낭'이 많아서 '볼래오름'이라 부른다. 또한 존자암이 있어 불래악(佛來岳)이라고도 부른다." 서귀포시가 발행한 서귀포시지명유래집의 내용이다. 이런 식의 설명들로 인해 보리수나무와 관련이 있다거나 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재창작되고 있다. 이 오름에는 보리수나무가 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다른 오름에도 난다.
존자암지에 대해선 1993년 1994년 두 차례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 출토한 유물과 각종 기록을 바탕으로 조사단은 이 절이 1373년과 1384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탐라 시대와는 거리가 멀다. 이 오름의 이름이 불래악(佛來岳)이라는데 결부시켜 이 절과 관련한 지명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건 우연일 뿐이다.
보리악이란 오름이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산2-1번지다. 그런데 그 이름이 수상하다. 제주특별자치도 자연환경생태정보시스템이 제공하는 정보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볼레와 보리는 ‘벼랑’의 뜻
'보리'는 어원이 미상이며 한자로는 保狸岳(보리악)으로 표기돼 있다. 학자들의 언어학적 해석에 의하면 '보리오름'은 신성한 산이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견해가 있는데, 神聖(신성)을 뜻하는 옛말 '발'이 '보리'로 됐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축약해 쓰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내용은 담아야 하는데 그렇질 않으니 읽는 이로서는 답답할 따름이다. 보리악으로 쓰지만 어원은 미상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발'이라는 말에서 유래하는데 그 뜻은 신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발'은 신성하다는 뜻이어야 하고, 이 보리악이라고 하는 오름은 신성한 산이어야 하는데 정말 그런지 밝혀줘야 하는 것 아닌가. 최소 어떤 점에서 신성하다고 볼만하다 정도는 표현해 줘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문헌에는 "이 오름이 예부터 '보리오롬'이라 부르고, 제주군읍지를 비롯한 옛 지도에 모악(牟岳) 또는 맥악(麥岳)으로 표기했으며, 근래 지도에는 보리악(保狸岳)으로 표기했는데 '보리'가 麥(보리)인지는 분명치 않다"고 했다. 모악(牟岳)과 맥악(麥岳)이 모두 '보리'를 뜻하는 한자이고, 보리악(保狸岳)이라는 글자도 '보리'를 한자를 빌려 쓴 것이기 때문에 굳이 부가적으로 설명한 모양이다.
사실 보리악의 '보리'가 신성(神聖)을 뜻하는 옛말 '발'에서 유래했다는 것도 수긍하기 힘들고, 곡식 보리와 관련됐으리라고는 생각하기조차 힘들다. 보리오름에 보리를 재배한 바도 없으려니와 재배할 수도 없는 깊은 산속이니 어떻게 연관시킬 수 있겠는가.
이 보리오름 지명 역시 볼레오름과 같은 유형이다. '벼라', '비러', '비레', '보레', '볼레'로 이어져 온 벼랑의 의미가 포함된 지명이다. 이 오름에는 엄청난 깊이의 벼랑이 있다. 넓이도 꽤 넓다. 이 보리오름의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깊고 넓은 계곡이 펼쳐지는 것이다. 보리오름의 '보리'란 '벼랑'의 뜻이다. 볼레오름과 보리오름 지명은 같은 뜻이며, 벼랑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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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한라산 영실탐방로의 숲길을 지나면 하늘이 열리면서 시야가 트인다. 숨이 가쁘다. 뒤를 돌아보면 드넓은 숲과 오름과 해안과 바다가 들어온다. 가장 가까이 보이는 오름이 볼레오름이다. 서귀포시 하원동 산1-1다. 표고 1374.2m, 자체 높이 104m다. 이 오름엔 북서쪽으로 크게 벌어진 분화구가 있다. 오름 정상에서 화구바닥에 이르는 사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남서쪽으로는 커다란 계곡이 만들어져 있는데, 특히 정상 부분은 깎아지른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동쪽 기슭에는 샘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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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실탐방로에서 바라본 볼레오름, 오른쪽은 이스렁오름이다. 사진=김찬수 |
이 오름의 지명은 1653년 탐라지에 포애악(浦涯岳)이라고 한 기록을 비롯해 여러 고전에 표기된 바 있다.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에는 볼레오름으로 표기했다. 이렇게 표기한 지명은 포애악(浦涯岳), 볼라악(乶羅岳), 보라악(甫羅岳), 포라악(鋪羅岳), 불래악(佛來岳), 볼레오름 등 모두 여섯 가지가 된다.
한자를 소리글자로도 활용
이 지명들은 볼레오름 혹은 볼래오름의 음을 그대로 써 보고자 차용한 한자 지명이다. 이 한자들의 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소리 나는 그대로 표기하기 위해 동원했을 뿐 뜻글자로서의 한자를 동원한 것이 아니다. 즉, '벼라', '비러', '비레', '보레', '볼레' 등으로 변천을 겪은 '벼랑'의 변음들이다. 그러니 이 지명들은 벼랑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한자는 뜻글자라는 집착을 떨치지 못한 채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갖다 붙인 것이 널리 유포되고 있는 존자암 관련 내용들이다. 발음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보려고도 했다. 위의 한자 지명에 나오는 포애(浦涯), 볼라(乶羅), 보라(甫羅), 포라(鋪羅), 불래(佛來) 등은 '볼레'라는 음만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이것이 볼레나무라는 취지로 썼다는 근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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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레오름 분화구는 서북향, 영실탐방로에서 벼랑은 보이지 않는다. |
존자암지에 대해선 1993년 1994년 두 차례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 출토한 유물과 각종 기록을 바탕으로 조사단은 이 절이 1373년과 1384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탐라 시대와는 거리가 멀다. 이 오름의 이름이 불래악(佛來岳)이라는데 결부시켜 이 절과 관련한 지명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건 우연일 뿐이다.
보리악이란 오름이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산2-1번지다. 그런데 그 이름이 수상하다. 제주특별자치도 자연환경생태정보시스템이 제공하는 정보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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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실계곡 앞에 벼랑으로 되어 있는 볼레오름. 영아리오름에서 촬영. |
볼레와 보리는 ‘벼랑’의 뜻
'보리'는 어원이 미상이며 한자로는 保狸岳(보리악)으로 표기돼 있다. 학자들의 언어학적 해석에 의하면 '보리오름'은 신성한 산이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견해가 있는데, 神聖(신성)을 뜻하는 옛말 '발'이 '보리'로 됐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축약해 쓰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내용은 담아야 하는데 그렇질 않으니 읽는 이로서는 답답할 따름이다. 보리악으로 쓰지만 어원은 미상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발'이라는 말에서 유래하는데 그 뜻은 신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발'은 신성하다는 뜻이어야 하고, 이 보리악이라고 하는 오름은 신성한 산이어야 하는데 정말 그런지 밝혀줘야 하는 것 아닌가. 최소 어떤 점에서 신성하다고 볼만하다 정도는 표현해 줘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문헌에는 "이 오름이 예부터 '보리오롬'이라 부르고, 제주군읍지를 비롯한 옛 지도에 모악(牟岳) 또는 맥악(麥岳)으로 표기했으며, 근래 지도에는 보리악(保狸岳)으로 표기했는데 '보리'가 麥(보리)인지는 분명치 않다"고 했다. 모악(牟岳)과 맥악(麥岳)이 모두 '보리'를 뜻하는 한자이고, 보리악(保狸岳)이라는 글자도 '보리'를 한자를 빌려 쓴 것이기 때문에 굳이 부가적으로 설명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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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
이 보리오름 지명 역시 볼레오름과 같은 유형이다. '벼라', '비러', '비레', '보레', '볼레'로 이어져 온 벼랑의 의미가 포함된 지명이다. 이 오름에는 엄청난 깊이의 벼랑이 있다. 넓이도 꽤 넓다. 이 보리오름의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깊고 넓은 계곡이 펼쳐지는 것이다. 보리오름의 '보리'란 '벼랑'의 뜻이다. 볼레오름과 보리오름 지명은 같은 뜻이며, 벼랑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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