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개발 20년, 그 현장에 서다](4)섭지코지, 관광개발에 빼앗긴 삶터
입력 : 2011. 06. 08(수) 00:00
아름다운 해안경관이 참혹함·부끄러움으로
▲섭지코지를 메우고 있는 건물 들, 휘닉스 아일랜드와 공사중인 해양 과학관으로 섭지코지의 평화롭고 한적한 경관은 사라져 버렸다. /사진=참여환경연대 제공
한라산 방향으로 건물 다닥다닥 경관 해쳐
섭지코지 주차장 문제 아직도 현재진행형
단기 투자유치에 급급… 개발정책 변화 시급

섭지코지는 제주의 동쪽 끝 세계자연유산인 성산 일출봉과 마주하고 있고, 빼어난 해안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섭지코지의 어원은 협지(狹地)에서 유래된 것인데, 좁은 땅이라는 뜻이다. 섭지코지 자체가 좁은 땅이라는 뜻이 아니고, 섭지코지는 원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인데, 성산 일출봉처럼 사구로 인해서 육지화된 육계도(陸繫島)이기 때문이다. 섭지코지의 관문인 신양해수욕장 입구는 불과 20여 미터의 사구로 본섬과 이어져 있었다. 코지라는 뜻은 '곶'에서 유래되어서 바다로 돌출된 지형을 말한다.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되면서 바다로 가장 돌출된 부분 전망대에는 이곳이 오름임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증거가 있다. 전망대의 지질은 제주에서 흔히 '송이'라고 불리는 스코리아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오름을 '붉은오름'이라고 부르는데, 이름 그대로 붉은 스코리아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하지만 오름이라고 짐작하기 어려운 것은 파도에 의한 침식으로 오름의 형태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섭지코지는 제주사람들 조차 손꼽는 아름다운 해안경관을 가진 곳이다. 아름다운 사구 위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 떼 들, 옥빛으로 빛나는 신양해안과 일출봉의 웅장함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 아름다운 해안 식물들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곳, 낙원이 있다면 이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던 곳이다.

2011년 섭지코지를 다시 보았을 때, 참혹함과 부끄러움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섭지코지 입구부터 4차선 도로가 뚫려 있고, 현재 공사중인 '해양과학관'공사가 거대하게 자리잡으면서 잘못 길을 잡은 것은 아닌지 어리둥절해졌다. 4차선도로를 따라서 들어가자 거대한 건물들이 눈 앞에 가로놓여 있다. 이미 운영중인 '휘닉스 아일랜드'로 이어졌다. 섭지코지는 휘닉스 아일랜드 옆으로 조그맣게 난 도로를 다시 찾은 후에야 갈 수 있었다. 섭지코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서야 과거의 모습이 조금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올인'의 세트장이었던 '올인하우스'와 전망대를 찾고 있었다. 제주의 방어유적인 협자연대에서 한라산쪽을 바라보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확연히 확인할 수 있었다.

한라산쪽으로 가득한 건물들, 그리고 현재 공사중인 해양과학관… 마치 중문관광단지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중문관광단지 보다도 건물의 밀집도는 더 두드러져 보였다. 그리고 성산일출봉 쪽을 보니, 또한 건물 하나가 성산일출봉을 가리고 있었다. 이 건물도 '휘닉스 아일랜드'의 일부라고 하고, 일본의 유명건축가인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건물을 자세히 보니 위치를 더 높이려고 아래에 돌을 채워서 쌓아 올린 것이 보였다. 이해할 수가 없다.

▲세계자연유산 일출봉을 가리고 있는 휘닉스 아일랜드 건물.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는 건물이지만, 건물을 높이기 위해 기반작업을 하여 주변 경관을 고려하지 않은 건물로 보인다
섭지코지 주변 관람로 만을 빼고 '휘닉스 아일랜드' 쪽은 모두 돌담으로 둘러처져 있고, 사유지이기 때문에 출입통제한다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휘닉스 아일랜드'쪽으로 이어진 유일한 통로에는 매표소가 세워져 있고,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섭지코지는 이미 제주도가 아니고 '휘닉스 아일랜드'였다. '휘닉스 아일랜드'에 밀린 위태로운 제주도가 안타깝게 남아 있다.

모 언론사의 계열사이자, 훼밀리마트로 친숙한 ㈜보광은 2006년 4월에 휘닉스아일랜드 공사를 착공해서 2008년 6월에 준공하였다. 총사업비는 3870억원을 투입하여 섭지코지 주변 약 66만여㎥와 공유수면 약 2만9000㎥에 300실 규모의 콘도와 50실 규모의 빌라형 콘도, 엔터테인먼트 센터, 전시관, 해중전망대, 해양레포트 센터 등을 지었다. 휘닉스 아일랜드의 콘셉트는 프라이빗 타운, 즉 고급소비자를 겨냥한 일반인들과는 격리된 공간을 만드는 것에 두었다. 섭지코지 주차장 뒤편에 있는 독채형식의 빌라형 콘도는 넓은 실내에서 파티나 연회까지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결국 부자들만의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원래 설계된 의도대로라면 지금의 주차장도 없애고, 섭지코지의 일반인 관람도 제한되어야 했다.

▲프라이빗 타운의 개념으로 만든 별장형 콘도. 한 채의 가격이 20억원 정도이다. 휘닉스 아일랜드 측은 당초 이 콘도 앞에 있는 섭지코지 주차장을 없애고, 일반인의 출입을 차단하여 해안을 사유화하려고 하였다.
문제는 2007년 8월, 섭지코지 올인하우스 주차장과 들어가는 진입로를 제주도 당국이 모두 보광그룹측에 팔아넘겼다는 소식을 마을주민들이 알면서 시작되었다. 이 과정은 당시 신양리 이장과 개발위원장, 어촌계장이 주민들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도장을 찍어 준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 사실을 안 주민들은 긴급주민총회를 열고 주차장과 진입로 매매가 무효하다는 것과 취소하는 것을 제주도당국에 강력히 요구하였다. 제주도당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주차장 부지를 중심으로 마을 주민들이 머리띠를 매고 전면 시위를 벌였다. 결국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보광그룹에 팔았던 진입도로와 주차장 부지는 국유지와 도유지로 환원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현재까지도 제주도 담당 공무원들이 계속해서 마을주민들을 회유하고 있다.

중문관광단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토지를 강제수용하면서 주민들을 몰아내는 과정이 있었다. 그 때는 정부주도의 개발과정이었지만, 시대가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달라진 것은 그 때는 중앙정부의 주도였지만, 지금은 지방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진다. 맹목적 투자유치와 관광개발 외에 어떤 다른 고려도 없다. 후세에 물려주어야 할 최고의 경관자산을 사기업의 투자에 헐값으로 넘기고, 지역주민들의 의사도 무시된 과정은 관광개발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질곡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제주도 당국은 개발이 되면 지역주민들에게도 경제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어떠한가? 개발사측에 토지를 판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과거에 보장되었던 권리를 빼앗기고, 지금은 개발지의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 다행히도 마을주민들이 섭지코지 진입로와 주차장을 되찾아 마을의 수입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지만, 이마저도 부유층의 독립된 공간을 원하는 보광 측의 의도에 언제 운명이 달라질지 모른다.

국제자유도시를 추구하면서 계속되는 투자유치 노력은 대부분 땅만 파헤쳐지고, 실패로 끝나거나, 실현되더라도 기업의 이익추구에 주민의 이익을 배반하고, 제주의 미래자산을 훼손하고 있다. 단기적인 투자유치에 급급한 제주도의 개발정책은 이제 제주의 가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로 바뀌어야 한다.

<한라일보 - 천주교생명위원회-참여환경연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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