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관람객을 감동시킬 박물관이 아쉽다
입력 : 2014. 06. 23(월) 00:00
최근 도내 사설 박물관 몇 곳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저마다 고유의 테마를 내세운 곳들이었는데, '손님맞이 준비가 제대로 돼 있는가'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인 손님을 위한 리플릿조차 비치되지 않았고, 장애인이나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든 고령자들을 위해 설치됐다는 엘리베이터는 고장나 멈춰서 있었다. 몇 곳의 박물관에서 받은 인상을 도내 전체 박물관 점수로 매기는 건 분명 비약이지만 적잖은 도내 박물관들이 처한 현실이다.

박물관은 그 나라나 지역의 문화수준을 상징한다. 한 나라나 지역의 역사나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제주에서 박물관 숫자만 놓고 보면 제주는 누가 봐도 '박물관 천국'임에 분명하다. 2013년 기준 도내 등록된 박물관과 미술관이 73곳에 이르고, 미등록된 박물관형 관광지까지 포함하면 100곳이 훌쩍 넘는다.

그 많은 숫자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지역사회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지역 문화예술인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관람객들이 다시 찾고 싶은 감동의 공간으로 자리한다면 제주의 또 하나의 성장동력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박물관이 숫자만큼의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그 이름에 걸맞게 내실있는 운영으로 도민과 관광객들의 문화복지 체감도를 높이는 데 힘을 보태고 있느냐는 질문에 맞닥뜨리면 얘기는 180도 달라진다. 돈벌이가 된다는 인식에 짧은 시간에 박물관이 생겨나면서 기존 박물관과 유사한 콘텐츠 베끼기와 빈약한 내용물 등이 논란거리로 떠오른지 오래다. 입장객수를 늘려 수입 창출에만 주력하면서 단체관광객 유치를 위해 입장료의 절반 이상을 여행사에 송객수수료로 제공하는 곳도 많다. 업체 난립으로 수수료를 주지 않으면 관광객 유치가 어렵다는 게 제주박물관이 처한 현실이고, 수수료까지 감안해 입장료를 책정하다 보니 손님 입장에선 박물관의 규모나 전시 내용에 비해 비싸게 느껴지기도 한다.

미국의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올 초 제주도 박물관을 집중 조명하면서 쓴소리를 했다. 박물관을 개관할 경우 행정에서 저렴한 금리로 대출해주는 등 금융과 세제혜택을 제공하면서 현금 확보수단으로 박물관을 개관하는 개발업자도 생겨나는 등 박물관끼리 벌이는 전쟁에 대해 혹평을 쏟아낸 것이다.

이처럼 제주에 박물관이 난립하면서 업계 안팎에선 박물관 관리운영 개선과 안정적인 지원체계 등 재정적·제도적 지원근거 마련을 통한 문화산업 육성토대 구축을 위한 조례 제정의 필요성을 줄곧 제기했고, 2013년 7월 제주도 박물관 및 미술관 조례가 제정됐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조례는 경기도가 2006년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2008년엔 경상남도와 충청남도가 만드는 등 지자체별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제주도는 박물관·미술관 진흥조례를 만들고도 1년이 되도록 별다른 후속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모든 시장은 포화시점에 다다르면 생존을 위한 출혈경쟁이 불가피하고 그 부작용으로 문을 닫는 곳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서둘러 조례에 따른 후속조치 등 박물관 품질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알맹이 있는 박물관에는 우수한 학예사 등 전문인력 확보를 위한 인건비 등 재정적 지원과 평가인증제를 통한 육성이 공멸을 막는 길이다. <문미숙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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