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목요담론] 얽히고설킨 갈등 난국을 푸는 게 민생이다
입력 : 2024. 12. 26(목) 06:30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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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가로수와 하천변의 칡덩굴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갈등(葛藤)은 덩굴식물이 서로 엉켜 자라는 모습에서 생겨난 한자어다. 만약에 칡과 등나무가 만나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감고 올라갈 것이다. 한창 자라면 서로를 떼어내기 어려울 정도가 되며, 심할 경우는 두 종을 잘라내야 한다. 서로가 다른 종에 기대어야 유리하지만, 상대방을 누르고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 사실 야생에서 칡과 등나무는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생태적 오해로 인간세상을 빗대었지만, 칡덩굴의 확산으로 피해보는 식물들이 심각하다.
차사본풀이에서는 김치 원님과 염라대왕이 만나 서로의 입장을 고집하다 강림차사의 충언으로 서로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다행인가 싶지만, 엉뚱하게도 까마귀가 솔개를 의심한다. 사연은 이렇다. 염라대왕의 신임을 받은 까마귀는 인간의 수명을 담은 적패지를 갖고 오다가, 까마귀가 대신 전달해 주겠다는 제안을 덥석 받는다. 그런데 까마귀가 그 적패지를 한눈팔다 떨어뜨리는 바람에 옆에 있던 솔개가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 사실은 뱀이 물고 가 돌담으로 사라진 줄도 모르고, 솔개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다. 솔개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걸 차지하고서 환골탈태한 뱀은 끝내 이실직고하지 않는다.
솔개와 큰부리까마귀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덩치로 봐서 당연 솔개가 승자일 듯하지만, 하늘에선 순조롭게 시합을 끝낸다. 어승생악이나 노꼬메오름에 오르면 간혹 큰부리까마귀가 솔개를 비롯해 독수리, 벌매, 참매, 매, 새매, 말똥가리에 접근해서 비행을 방해하거나 성가시게 하는 행동을 쉽게 볼 수 있다. 심할 때는 깃털이 뽑힐 정도로 다투기도 하지만, 솔개는 유유히 비행할 뿐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솔개는 그 영역을 벗어나고 까마귀도 비행을 멈춘다. 두 종 간의 양보와 배려 그리고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었기에 둘은 의존하며 살아간다.
올 연말 유난히 제주의 오름 들녘에서 비행하는 솔개들이 많다. 김치 원님과 염라대왕을 대신해서 먼 옛날 솔개의 억울한 사연을 풀려는 것일까. 사람도 저승갈 때 삼혼을 불러주듯, 하찮은 솔개와 덩굴일지라도 함부로 대하면 분하다. 인간 세상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자연은 누구의 편을 들지 않는다. 충돌을 피하고 화해하는 자연에서 새삼 인간사의 갈등을 녹일 수 있는 묘안을 궁리해 본다. 갈등은 개인, 가족, 집단, 지역, 국가 간에 늘 발생한다.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양보와 타협 그리고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갈등을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두 왕의 신임을 받은 강림차사는 까마귀의 의심행동을 나무라며 솔개는 죄가 없다고 판결한다. 까딱하면 까마귀의 속임수에 솔개는 날지 못할게 뻔했다. 하지만 솔개는 자신을 의심한 까마귀를 용서하고, 더 의연하게 이 땅의 난제들을 중재하려고 불현듯 나타난 것이 아닐까. 솔개의 혜안이 모두의 안녕을 판결한 강림차사처럼 얽히고설킨 실타래 난국을 풀어주길 기대해 본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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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와 큰부리까마귀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덩치로 봐서 당연 솔개가 승자일 듯하지만, 하늘에선 순조롭게 시합을 끝낸다. 어승생악이나 노꼬메오름에 오르면 간혹 큰부리까마귀가 솔개를 비롯해 독수리, 벌매, 참매, 매, 새매, 말똥가리에 접근해서 비행을 방해하거나 성가시게 하는 행동을 쉽게 볼 수 있다. 심할 때는 깃털이 뽑힐 정도로 다투기도 하지만, 솔개는 유유히 비행할 뿐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솔개는 그 영역을 벗어나고 까마귀도 비행을 멈춘다. 두 종 간의 양보와 배려 그리고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었기에 둘은 의존하며 살아간다.
올 연말 유난히 제주의 오름 들녘에서 비행하는 솔개들이 많다. 김치 원님과 염라대왕을 대신해서 먼 옛날 솔개의 억울한 사연을 풀려는 것일까. 사람도 저승갈 때 삼혼을 불러주듯, 하찮은 솔개와 덩굴일지라도 함부로 대하면 분하다. 인간 세상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자연은 누구의 편을 들지 않는다. 충돌을 피하고 화해하는 자연에서 새삼 인간사의 갈등을 녹일 수 있는 묘안을 궁리해 본다. 갈등은 개인, 가족, 집단, 지역, 국가 간에 늘 발생한다.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양보와 타협 그리고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갈등을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두 왕의 신임을 받은 강림차사는 까마귀의 의심행동을 나무라며 솔개는 죄가 없다고 판결한다. 까딱하면 까마귀의 속임수에 솔개는 날지 못할게 뻔했다. 하지만 솔개는 자신을 의심한 까마귀를 용서하고, 더 의연하게 이 땅의 난제들을 중재하려고 불현듯 나타난 것이 아닐까. 솔개의 혜안이 모두의 안녕을 판결한 강림차사처럼 얽히고설킨 실타래 난국을 풀어주길 기대해 본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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