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철의 월요논단] 잊혀진 제주 수렵문화, 옛이야기 속에 살아있다
입력 : 2026. 05. 11(월) 01:00
문종철 hl@ihalla.com
[한라일보] 제주도는 예전부터 쌀이 귀했다. 요즘에야 너도나도 쌀밥, 제주도 말로 곤밥을 먹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메밀범벅, 조밥, 보리밥, 뻿데기 등 잡곡이 주식이었다. 좁쌀로 육지에서 식혜라고 부르는 감주를 만들었으며 술 또한 좁쌀로 빚었다. 쉬어버린 보리밥을 이용해서 제주 토종 음료인 쉰다리를 만들었다. 곤밥은 제사 혹은 명절 때나 먹을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

제주에서 잡곡을 주로 소비했던 까닭은 쌀농사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흙은 화산회토가 주를 이룬다. 화산회토는 가볍고 바람에 날리기 쉬운 성질을 지녔다. 더군다나 밀도가 낮아 물이 고이지 못하고 쉽게 지하로 흘러가 버린다. 그래서 제주도는 연중 강수량이 많은 편에 속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늘 가뭄에 시달렸다. 쌀농사는 많은 물을 요구하기 때문에 제주도에는 어울리지 않는 농사법이었다.

이처럼 제주도는 농사에만 의존해 살아가기에는 척박한 땅이었다. 그래서 제주도 사람들은 농사에 더해 수렵이나 채집, 물질로 먹고 살았다. 물질이나 어업은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친숙하다. 그렇지만 수렵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제주도의 옛이야기들을 보면 수렵 또한 어업 못지않게 제주 문화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건국신화 중 하나인 '삼성신화'를 보면,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세 신인이 삼성혈에서 솟아나 사냥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셋이 서로 살 곳을 정할 때 활을 쏘아 화살이 떨어진 장소를 택했다. 농경은 바다 건너에서 온 세 공주와 삼을나가 혼인함으로써 비로소 시작된다.

'궤네깃당본풀이'에서도 이와 유사한 모습이 나타난다. 알송당 고부니마루에서 솟아난 소천국은 사냥을 통해 삶을 영위한다. 그는 바다 건너에서 온 백주또마누라와 결혼해 농경을 시작한다. 그렇지만 소천국은 농사를 짓다가 지나가던 스님이 새참을 다 먹어버리자 밭 갈던 소를 잡아 산적으로 꿰어 먹는다. 이에 화가 난 백주또마누라가 별거를 선언하자 첩을 끼고 산에 올라 다시 온갖 짐승을 사냥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제주에서 솟아난 신이 수렵으로 살아갔으며, 바다 건너에서 온 배우자와 결혼하여 농경을 시작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제주 토착 세력은 본래 수렵을 통해 살아갔으나 외부에서 온 세력에게 농경을 배웠음을 의미한다.

'서귀본향당본풀이'에서는 '고산국'이 바람난 자신의 남편 '바람운'과 동생 '지산국'을 '뿡개(투석구)'라는 제주 전통 무기로 해하려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원시적인 사냥 도구인 뿡개의 활용을 통해 수렵이 제주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제주의 옛이야기에서는 수렵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현대에 들어서 수렵 문화가 많이 쇠퇴해 기억에서 잊혔으나 옛날 조상들이 힘들게 살았던 시절에 이런 문화가 있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문종철 변호사>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355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오피니언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