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싹틔운 '경제민주화' 논의
입력 : 2012. 12. 26(수) 00:00
2012년 임진년(壬辰年)도 서서히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새해를 맞는가 싶더니 어느새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연초 부풀었던 마음은 간데없고 한없이 쪼그라든다. 한해의 결실이 그리 탐탐치 못한데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래도 올해는 대선을 치르면서 여느 해와 달리 의미있는 해다. 우리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올 시대적 화두를 던졌기 때문이다.

바로 '경제민주화' 논의다. 우리의 산업현장이 얼마나 비민주적으로 이뤄져 왔는지 새삼 일깨운다. 대선 과정에서 여·야 후보 가릴 것 없이 경제민주화가 대세라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그 요체는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 골목상권 침해 등 열거하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대기업들의 상생(相生)선언은 말장난에 불과했다.

얼마전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도 대기업을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는 '을'이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을사(乙死)조약'"이라고 했다.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에 빗댄 것. 현재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가 그렇다는 얘기다. '갑'인 대기업의 불공정행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실제로 산업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기업의 횡포를 보라. 무엇보다 경제민주화를 비웃는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다. 지난해 30대 재벌 계열사 5곳중 1곳은 내부거래 비율이 70%를 넘었다. 총수가 있는 자산순위 30대 그룹 소속 1165개 계열사중 내부거래 비율 70% 이상이 18.1%(211개사)에 달했다. 이중 매출 100%를 내부거래한 곳도 56개사(4.8%)나 됐다. 왜 이게 문제인가. 공정경쟁을 가로막고 재벌의 편법적인 재산상속 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기술유출 역시 심각하다. 중소기업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술유출을 경험한 중소기업은 12.5%였다. 중소기업 10곳당 1곳 이상이 기술유출을 당한 셈이다. 그 피해액은 건당 평균 16억원에 이른다. 기술유출의 42.2%가 핵심인력 스카우트 수법으로 이뤄졌다. 이러니 중소기업이 경쟁력은 고사하고 살아남기조차 쉽지 않은 실정이다.

최근엔 롯데그룹 계열사가 수년간 함께 일하던 중소협력업체의 핵심기술을 훔쳐쓰다 적발됐다. 이 회사는 몰래 빼낸 중소협력업체의 ATM(현금자동입출금기) 관련 핵심기술로 동종프로그램을 만들어 영업한 혐의다. 롯데 같은 재벌기업이 법도, 윤리도 없이 중소협력업체를 등친 것이다. 재벌기업이 중소기업의 목을 죄는 횡포의 종합판이나 다름없다.

엊그제는 '수퍼 갑' 홈쇼핑의 만행이 드러났다. 홈쇼핑 업계의 뒷돈 관행이 검찰 수사결과 밝혀진 것. 홈쇼핑 직원들은 납품업체로부터 매달 월급처럼 돈을 받거나 외제 승용차의 리스대금을 대납시켰다. 컨설팅비 명목으로 돈을 챙기고 납품업체 내부정보로 주식거래를 한 직원도 있었다. 이처럼 고질적인 병폐들이 여전한게 우리 경제의 현주소다.

경제민주화 논의는 만시지탄이다. 굳이 이번 대선이 아니었더라도 경제민주화는 우리가 한번쯤 겪어야 할 홍역이다. 경제민주화란 개념이 왜 대두됐는가.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퍼지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나온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가 1%대 99%로 나뉜다는데 동의하는 사람이 80%가 넘는다고 한다. 갈수록 심각한 우리사회의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도 경제민주화는 필히 풀어야 할 과제다.

<김병준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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