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서러운 사람이 없는 세상
입력 : 2013. 02. 13(수) 00:00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삶의 질'에 모아지고 있다. 삶의 질을 들먹이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질 정도다. 우리네 팍팍한 삶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형편이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면 모를까. 그러기는 커녕 갈수록 고단하니 말이다. 마치 어두운 터널 속에 갇힌 채 빠져나올 수 없는 것처럼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래설까. 여전히 '힐링(healing)'이 화두다. 힐링이 뭔가. 아프거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다. 일반에 친숙해진 힐링이란 말은 이미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힐링이 산업으로 자리잡을만큼 기업의 마케팅에서도 열풍이다. 출판시장 역시 힐링을 키워드로 한 에세이가 대세다. 일상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자, 한번 우리사회를 돌아보자. 하루 살기가 버거운 사회적 약자들이 눈에 선하게 밟힌다. 힐링은 살만한, 여유로운 사람들이나 누릴 수 있는 몫으로 들린다. 심신을 달래고 치유할 수 있으면야 그만 아닌가. 문제는 서러움에 한숨짓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다. 자본권력에 착취당하고 국가권력에 짓밟히며 눈물짓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선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비정규직은 법적 행정적인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한다. 노조로부터도 철저히 소외된다. 그래서 비정규직은 '반토막 인생'으로 불린다. 비정규직 비율이나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본의 탄압에 맞설 최소한의 방어적 무기인 노동권조차 없다. 게다가 우리사회의 외면도 이들을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는 이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까지 이런 불상사가 반복돼야 하는가.

철거민들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던 용산참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용산참사는 이명박 정부의 개발위주 정책과 국가폭력이 빚어낸 불행한 사건이다. 2009년 1월 20일 점거농성중인 철거민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6명이 숨졌다. 이 사건으로 8명이 구속됐다. 이중 2명은 지난해 풀려났다. 나머지 6명중 5명은 최근 특별사면 됐다. 1명은 아직도 옥고를 치르고 있다. 그들의 시위는 오로지 생존권을 위해 발버둥친 것이다.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철거민들의 목숨을 건 절규였다.

제주해군기지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강정마을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2007년 5월 해군기지 부지가 선정된 이후 강정마을은 두 동강이 났다. 마을주민들이 찬·반으로 나뉘면서 내편, 네편으로 갈가리 찢겼다. 단지 해군기지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주민끼리 철천지 원수가 됐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해군기지를 반대하다 연행되거나 투옥된 주민이 한 둘이 아니다. 대다수 강정주민을 범법자로 만들었다. 정겹고 평화롭던 시골 마을의 공동체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이런 비극이 어디 있는가.

이제 10여일 후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다. 박 당선인은 대선과정에서 누누이 강조한게 있다. 바로 100% 국민통합과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대통령이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용산참사 철거민과 강정주민들의 아픔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 한 국민통합도, 국민행복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희망의 새시대를 열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벌써부터 큰 이유다. <김병준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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