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마리아나 제도와 제주도
입력 : 2013. 05. 01(수) 00:00
서태평양 한복판, 직사광선처럼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아래 40여 개의 크고 작은 화산섬이 유선형으로 뻗어있다. 바로 마리아나 제도다. 세계적 휴양지인 괌과 사이판, 티니안, 로타 등이 마리아나 제도에 속한다. 우리에게는 식민시기 제주도민을 포함 수많은 한인들이 일제에 의해 끌려가 희생당한 통한의 땅이다. 지난 3월21일부터 28일까지 찾은 마리아나 제도는 원시 자연의 순수 매력과 전쟁의 기억과 잔재로 뒤얽힌 아픈 역사가 긴 여운을 안겨주는 곳이다.

마리아나 제도는 일찍부터 제국주의 세력의 각축장이었다. 일본도 이곳을 호시탐탐 노렸다. 괌에서 이오지마와 오가사와라 제도를 거쳐 일본 본토까지 이어지는 앞마당과 같은 곳으로 여겼다. 일본의 야욕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 이곳을 식민지화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후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곳곳에 전쟁기지를 만들었다. 일본의 무모한 침략전쟁을 위해 수많은 한인들이 노무자로, 군속으로, 혹은 정신대로 끌려가 혹독한 희생을 강요당했다.

미국으로서도 일본 본토를 공략하기 위해 마리아나 제도는 중요했다. 미·일간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 바로 마리아나 제도다. 미국은 사이판과 티니안, 괌 전투에서 잇따라 승리를 거뒀다. 이어 티니안의 일본군 비행장을 원자폭탄 발진기지로 이용했다. 1945년 8월6일 티니안 비행장을 이륙한 B29슈퍼포트리스 폭격기 일명 '에놀라게이'는 일본 히로시마에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이어 사흘 뒤에는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됐고 일본의 항복으로 이어졌다.

당시 티니안으로 동원됐던 한인들은 어떻게 됐을까.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30여년 만인 1977년 3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티니안 밀림 속에서 한인 추정 유골 5000여구가 발견된 것이다. 이곳으로 끌려간 한인들의 처참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례다. 이를 계기로 마리아나 제도를 포함한 남양군도로 끌려간 한인들에 대한 조사가 민간차원에서 본격화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실태파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남양군도 섬마다 위령비를 세우고 전쟁을 미화하고 성역화하느라 법석이다. 침략에 대한 반성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자살절벽과 만세절벽, 최후의 사령부 등은 일본인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다. 최근 아베 신조 내각이 야스쿠니신사를 집단 참배하고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것도 이 같은 일본사회의 뿌리 깊은 우경화 움직임과 맥을 같이한다. 미국 또한 태평양전쟁과 관련된 전적지들을 조사하고 역사현장으로 보존ㆍ활용하는가 하면 전쟁박물관을 건립, 역사교훈의 장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사이판과 티니안에 위령비 하나 세운 것이 고작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누구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제주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강제 징용돼 희생됐으나 과거의 잊혀진 역사가 된지 오래다. 알뜨르비행장을 비롯 제주도 태평양전쟁 유산도 대부분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규모와 다양성 면에서 세계적 중요성과 함께 역사교훈의 장으로서의 미래 활용가치를 고려하면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의지가 아쉽다. <이윤형 사회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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