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산지천에서
입력 : 2013. 06. 19(수) 00:00
1928년 산지천 하류의 산지항은 축항공사가 한창이었다. 일제가 제주성지 성곽을 허물고 그 성돌로 바다를 매립 항구를 만들기 위한 공사였다.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에 의해 야금야금 훼철되던 제주성 성곽이 본격적으로 해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왜곡돼버린 식민지 경관은 제주의 역사문화 정체성을 크게 훼손시키고 말았다.

이 당시 제주고고역사에 한 획을 굿는 유물이 발견된다. 산지항에서 화천 등 중국 화폐유물 18매가 출토된 것이다. 중국제 화폐는 기원전 2세기 초에서 기원 후 1세기 중반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어떻게 기원 무렵 중국제 화폐가 절해고도의 섬 제주 산지항에서 발견된 것일까. 이는 당시 탐라가 중국과 한반도 일본 등 주변국과 활발한 대외교류를 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한반도와 일본에서도 발견되는 화천은 당시 교류상을 보여주는 표지적 유물로 이해된다. 대외교류의 중심에 산지천이 있었다.

제주시 원도심을 관통하는 산지천은 이처럼 기원 무렵부터 대외교류의 관문이자 문화의 교차로였다고 할 수 있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제주 역사문화의 원천이자 젖줄 역할을 했다.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공간, 사람과 물자가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요즘 식의 표현을 빌면 제주도가 추구하는 국제자유도시라고나 할까. 산지천을 중심으로 역사적인 건물이 들어섰고 아름다운 홍예교가 만들어졌다.

제주도가 산지천 일대에 탐라문화광장을 조성하겠다는 것도 이런 맥락을 짚어보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산지천은 역사문화가 흐르는 가장 제주적이면서 대외 개방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7월 착공하는 탐라문화광장이 곧 제주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가장 제주적인 역사문화공간이 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탐라문화광장은 주거환경개선과 문화예술진흥, 교통체계 개선 등 4개 분야에 1308억 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사실상 오래된 골목길 등 도로를 넓히고 정비하는 토건식 사업이라는 지적을 낳고 있다. 역사문화 경관을 지우면서 탐라문화광장을 조성하겠다는 발상은 계획단계부터 우려를 낳았다. 게다가 원도심의 고도 완화까지도 추진되고 있어 고도로서의 제주시 역사문화 경관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앞서 원도심 도시재생 구상이 실패로 끝난 이유중 하나도 고도완화를 통한 고층아파트 단지 위주의 사업 추진방식이었다.

막대한 예산을 들인 산지천 하류의 중국 피난선 '해상호'도 철거를 검토중이다. 유지비도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탐라문화광장의 성격에도 맞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그런데 산지천은 고대부터 개방적인 공간이었다. 탐라가 폐쇄적이었다면 주변 국가와 교류하면서 독특한 역사문화를 발전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선박 하나를 놓고 탐라의 정체성이 훼손되는 것인 양 하는 모양새가 우습다. 오히려 훼손은 토건식 발상으로 역사문화 경관과 정체성을 소홀히 여기는 행정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철거의 옳고 그름을 떠나 무엇이든 쉽게 허물어버리려고 하는 데서 행정의 무책임성과 경박스러움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윤형 사회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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