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박수칠 때 물러날 수 있는 용기
입력 : 2013. 07. 24(수) 00:00
불현듯 '낚시론'이 떠오른다. 뜬금없이 웬 낚시를 들먹이느냐고 할지 모른다. 80년대 초 김동길 교수가 언론에 쓴 칼럼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던 '낚시론' 얘기다. 김 교수의 주장은 간명하고 명쾌하다. "3김(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은 낙향해서 낚시하라"며 3김의 정계 퇴진을 촉구한 것. 5공시절 3김에게 낚시나 하면서 세월을 낚으라 했으니 난리날만 했다.

요즘 제주정가가 30년전의 중앙정치판을 닮아가는 형국이다. 마치 80년대 3김시대를 예고하는 것 같다. 지방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그런 조짐이 노골화되고 있다. 벌써부터 제주정가가 들썩인다. '제주판 3김'이랄 수 있는 김태환 신구범 우근민(가나나 순) 전·현직 지사는 여전히 건재하다. 이들 세분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김태환 전 지사의 행보가 부쩍 빨라졌다. 최근 KCTV 여론조사 결과가 괜찮게 나오면서 고무된 듯 하다. 얼마전엔 제주도청 기자실까지 찾아서 뼈 있는 말을 했다. 특별자치도를 완성할 수 있는 적임자가 없으면 고민하겠다고. 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는 우 도정에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3년동안 특별자치도가 중병에 걸려서 신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정치재개에 대한 포문으로 여겨진다.

신구범 전 지사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김 전 지사가 움직이자마자 협동조합을 매개로 정치 전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신 전 지사는 정치재개에 부담을 느끼는 듯 말을 아끼고 있다. 협동조합 '제주비전'의 출범 취지를 보면 이해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제주사회가 필요로 하는 차세대 지도자를 육성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신 전 지사는 출마보다는 모종의 역할론이 설득력을 더해준다.

우근민 지사는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 일체 언급이 없다. 출마하지 않을 거라면 속시원히 나오지 않겠다고 하면 그만이다. 지난 선거때도 "이번이 마지막 봉사"라고 했잖은가. 그 연장선에서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약속은 손바닥 뒤집듯이 '없었던 일'로 받아들이는게 지배적인 분위기다. 이제 임기가 1년 앞으로 접어든 시점에서 묵묵부답이니 자명하다. 다시 도전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자, 그럼 제주정가를 한번 되돌아보자. 제주판 3김이 제주도를 20년 이상 주물러왔다. 김 전 지사는 2004년 보궐선거에 이어 2006년 재선에 성공했다. 신 전 지사는 관선지사와 초대 민선지사를 지냈다. 우 지사는 관선 2번에 민선 3번 등 5번째다. 이들은 번갈아가며 최소 두번 이상 '지방대통령'으로 권력을 휘둘러왔다. 아직도 그 '권력의 맛'을 다 채우지 못한 것인가. '나 아니면 안된다'는 오만에 빠진 것인가.

흔히 산 정상에 오르기도 어렵지만 내려오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어찌보면 '등정'의 과정은 권력의 속성과 상통한다. 권력 역시 거머쥐는 것도 어렵지만 내려놓기는 더욱 어려운 것 같아서다. 그래서 위대한 지도자들은 '물러날 때'를 안다. 이들은 하나같이 박수칠 때 떠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준다. 현직인 우 지사부터 "나의 소임은 다했다"고 밝힌다면 얼마나 멋질까. 남들은 한번 하기도 어려운 자리를 무려 다섯번이나 했잖은가. 이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귀촌해서 가뜩이나 어려운 농어민들을 보듬어줬으면 한다. 더 이상 '자리'를 탐내는 것은 '노욕(老慾)'으로 비칠 수 있다. <김병준 편집부국장>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091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ϴ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