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1988년 도문예회관 시절이 아니다
입력 : 2014. 06. 16(월) 00:00
제주도문예회관이 문을 연 해가 1988년이다. 제주시 칠성로 다방에서, 허름한 무대에서 전시와 공연을 이어가던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은 그 해 8월 도문예회관 개관을 두고 숙원을 풀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22년이 흐른 2010년 5월 제주시에 제주아트센터가 개관했다. 전시실을 둔 도문예회관과 달리 1000석이 넘는 공연장 시설만으로 차별화를 꾀하며 운영에 들어갔다.

이번엔 서귀포시 태평로(서홍동)에 서귀포예술의전당이 지어졌다. 800여석의 대공연장과 190석의 소공연장, 206㎡의 대전시실과 82㎡의 소전시실 등으로 짜여져 이달 19일 개관 행사가 예정됐다.

이들 세 공간은 명칭이 각기 다르지만 지자체가 운영하는 '문화예술회관'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제주아트센터는 가칭 '한라문예회관'이었고, 서귀포예술의전당은 '서귀포종합문예회관'으로 불리다 공모를 거쳐 지금의 이름으로 확정지었다.

제주시에 도문예회관이 들어설 때만 해도 지역에 내세울 만한 문화공간이 없었던 때라 그 존재만으로 화제가 됐다. 제주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공연과 전시가 오랜 기간 그곳으로 몰렸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몇 년 새 제주 지역에 빛깔있는 문화공간이 늘어났다. 대관 위주 전시에서 탈피해 기획력을 갖추고 미술의 흐름을 살필 수 있도록 안내하는 공립미술관만이 아니라 빈 집 등을 고쳐 만든 문화 공간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잇따라 탄생했다. 혼자 힘으로 꾸민 개성있는 대안 공간도 생겨나고 있다.

이같은 현실에서 434억원을 들여 제주에 건립되는 세번째 문예회관인 서귀포예술의전당에 거는 도민들의 기대감이 높았다. 먼저 세운 두 문예회관 운영의 단점을 보완하며 서귀포의 대표적 문화공간다운 역할을 해주길 소망했다. 1988년 도문예회관이 모습을 드러내던 때처럼 지역에 큼지막한 문화공간 하나 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시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귀포예술의전당 건립공사를 담당한 제주도, 운영을 떠맡은 서귀포시는 20여년전 그 시절의 생각에 머물렀던 것 같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시실이다. 제주 미술인들이 개관을 준비중인 공간을 둘러보고 "이런 곳에서 도저히 전시를 진행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일 정도라면 서귀포예술의전당 건립은 '작은 도시에 새로운 문화인프라를 확충했다'는 자치단체장의 업적용 사업에 불과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전국 공연장(문예회관) 가동률을 봤더니 조사 대상 27곳 중에서 50%를 넘긴 곳이 제주, 부산, 인천, 해남 등 소수였다. 전시실도 50% 이상인 공간이 10곳에 그쳤다. 크고작은 문화 공간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전문성을 바탕에 둔 맞춤한 기획이나 공간이 조성되지 않으면 문예회관과 같은 복합문화시설은 설자리가 좁아진다.

도내 문화 공간 이야길 나눌 때마다 지역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200석 짜리 소극장, 500석 규모 중극장 하나 변변히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며 목청을 돋우는 이가 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지자체에서 맡는 문화공간이 늘고 있지만 예술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문화공간이 생길 때마다 공무원들 인사 숨통을 터주고 있을 뿐이라 그런 곳에서 전문적인 운영을 바랄 수 있겠는가." <진선희 사회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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