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제주愛 빠지다/ 제주 이주 N년차 이야기](18)신민희 해녀
입력 : 2025. 11. 11(화) 17:28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제주 바다가 만든 해녀의 기억 지켜가겠다"
해녀학교·인턴 과정 거쳐 2021년 12월 법환어촌계 가입
3년쯤 지나니 비로소 해녀 공동체 일원 인정받는 느낌
60대 중후반 상군 롤 모델… 해도 될까 싶다면 부딪히길
지난 7일 신민희 해녀가 작업장 한편에 보관된 테왁 망사리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진선희기자
[한라일보]그는 2018년 9월 제주올레길 7코스를 걸었다. 그 길에 있는 법환마을에서 해녀 체험을 하며 해녀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해녀 소재 다큐멘터리에서 "아직도 바다에 가는 게 좋다"는 90세 할머니의 말이 그의 곁을 맴돌았다. 전직 보디빌더로 서울 유명 호텔에서 피트니스 관리 업무를 했던 그는 지금 제주에서 해녀로 살아가고 있다. 서귀포시 법환어촌계 소속 신민희(42)씨다.

 "호기심이나 낭만이 아니라 직업으로서 해녀를 떠올렸어요. '기분 좋게 갈 수 있는 직장'이라는, 어찌 보면 비현실적인 이유로 해녀를 선택하게 된 거죠."

 신 씨는 해녀가 될 결심으로 2019년 1월 일터에 사표를 냈다. 장차 도움이 되겠다 싶어 몇 달간 필리핀에 머물며 프리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딴 뒤 제주로 향했다. 2020년 법환해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 인턴 과정을 밟던 중 일손이 부족했던 법환어촌계 해녀식당 멤버로 참여하며 물질할 기회를 더 빨리 가졌다.

 2021년 12월 해녀증을 발급받았지만 해녀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바다를 오간 지 3년쯤 됐을 때 자신에 대한 편견을 걷어낸 듯한 선배 해녀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때까지 버티는 동안 상군, 중군, 하군이 서로의 구역을 존중하며 암묵적 규율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해녀 공동체의 힘을 확인했다.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를 바다라는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거라는 판단이 서자 지난 일들이 이해가 됐다. 그래서 후배들에겐 "3년이 고비"라며 그 기간을 견뎌보라고 한다.

지난 7일 신민희 해녀가 범섬이 떠 있는 법환 바다를 배경으로 잠시 포즈를 취했다. 진선희기자
물질을 마친 신민희 해녀의 망사리에 바다에서 갓 잡은 해산물이 그득 들어 있다. 신민희 씨 제공
 하루 2시간 물질도 힘겨웠던 그는 이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5시간까지 작업에 나선다. 초반엔 바다에 순응하는 법을 몰라 물과 싸워 이기려고만 했던 탓에 몸이 더 피곤했다. 차츰 기량이 늘고 있지만 아직도 멀었다는 그다. 수십 년 물속을 누벼온 '해녀 삼춘들'은 바다에 난 길을 머릿속에 지도처럼 그리고 있어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훤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해녀는 여러 관계가 얽히는 법 없이 바다에서 건져올린 해산물의 무게로 인정받는 정직한 직업이다. 하지만 이즈음의 바다는 심상치 않다. 몇 해 전만 해도 상군들이 금채기가 풀린 뒤 물에 드는 날이면 뿔소라 300㎏을 잡기도 했는데 수온이 오르고 바다 환경이 나빠지면서 해마다 수확량이 감소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5년 전 60명이던 법환어촌계 해녀는 현재 36명으로 줄었다.

 제주도 남부에 폭풍해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7일, 범섬이 보이는 작업장에서 만난 신 씨는 "내 모습이 곧 제주 해녀"라는 다짐을 한다고 말했다. 최근엔 법환어촌계 공연단으로 '해녀 노 젓는 소리' 등 제주 민요를 익히며 해녀문화를 알리고 있다. 선배 해녀들이 물려준 연철(납벨트)을 매고 눈(물안경), 고무옷, 오리발 등도 예전 방식대로 쓴다. 과거에 마을 남자들이 산에서 구해온 다래나무로 제작한 테두리를 두른 오래된 테왁 망사리도 소중한 물질 도구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해녀들의 생활 하나하나를 기억하며 지켜가고 싶다고 했다.

 그의 롤 모델은 60대 중후반 나이의 상군들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흐르는 시간 속에 경험이 쌓이면 그 꿈에 닿을 듯하다. "30대 중반에 12년간 해오던 일을 그만두고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했지만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도 될까를 고민할 시간에 부딪혀봤으면 합니다. 도전해야 기회가 왔을 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끝>



■한라일보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109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제주에 빠지다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