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오래된 팽나무의 시선… 그 600년의 시간
입력 : 2026. 01. 09(금) 02:30수정 : 2026. 01. 09(금) 09:05
박소정 기자 cosorong@ihalla.com
황석영의 『<할매』
[한라일보] '한국 문학의 거목' 소설가 황석영이 장편소설 '할매'를 냈다.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철도원 삼대' 이후 5년 만에 펴낸 신작이다. 장구한 역사와 인간 너머의 생명으로 이야기의 지평을 한층 넓혔다.

소설은 한 마리 새의 죽음에서 싹 터 600년의 세월을 겪어온 팽나무 '할매'의 시선으로 이 땅의 아픈 역사와 민중의 삶을 엮어낸다.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던 저자는 전북 군산 하제마을에 있는 600년 된 팽나무를 만나면서 그 이야기를 펼쳐낸다.

소설은 새 한 마리의 여정으로 시작한다. 시베리아의 눈보라를 뚫고 날아온 개똥지빠귀가 금강 하구의 빈터에서 죽음을 맞는다. 새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뱃속에 품고 있던 팽나무 씨앗 하나는 긴 겨울을 견디고 싹을 틔워 마을의 수호신 '할매'가 된다.

"개똥지빠귀의 분해된 몸이 녹아들어 기름진 땅속으로 뿌리가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나갔고, 어린 팽나무 싹은 여름이 되자 묘목이 되어 몇 개의 가냘픈 가지와 잎사귀가 돋아나와 바람에 팔랑대고 있었다. 바람과 햇빛과 물안개와 가랑비와 폭풍까지 견디며 버티어낸 어린 팽나무는 다시 겨울이 오자 추위에 죽어버린 듯, 삭풍 속에 꽂혀 있는 메마른 작대기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이 팽나무는 스스로 죽음 같은 겨울의 정지와 봄마다 찾아오는 새 생명의 활기를 깨닫게 되었다."(본문 중)

오래된 팽나무의 시선은 자연과 인간의 장대한 역사를 따라간다. 소설은 이 팽나무가 한 겹 씩 나이테를 늘려갈 때마다 스쳐간 승려 '몽각', 당골네 '고창댁', 순교자 '유분도', 동학농민군 '배경순', 갯벌의 마지막을 기록하는 활동가 '배동수', 순교자의 후손이자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유 방지거' 신부 등 인물을 통해 인간군상의 파란만장한 삶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그 안의 이야기는 조선을 뒤덮은 대기근과 천주교 순교의 역사, 우금치 전토에서 산화한 동학농민군, 일제강점기의 비극, 새만금 갯벌과 미군기지 반대 운동까지 조선 초기부터 근현대까지 아우른다.

소설은 역사의 비극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던 모든 생명의 온기를 끝까지 껴안으며 위로한다. 저자는 "이 나무가 통과한 육백년이라는 시간은 물론 사람이 정한 시간일 뿐이며, 하늘의 해와 달과 별 그리고 바다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구분되지 않는 흐름 가운데 있다. 나는 사람으로서 이 육백년을 나무와 더불어 생각해보기로 했다"며 "이 나무를 둘러싼 육백년은 역사가 아니라 인연과 관계의 순환이며 카르마의 계속되는 전이에 관한 이야기이다"고 작가의 말에 남겼다. 창비. 1만6800원.

박소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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