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강정사태가 우려스러운 것
입력 : 2011. 09. 06(화) 00:00
강정 해군기지 건설현장에 우려하던 경찰력이 투입되면서 추석을 코앞에 둔 제주사회가 혼란스럽다. 제주도민이 외부 경찰력 투입에 특히 민감한 것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 역사적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서청이나 토벌대에 의한 대량 인명 피해는 4·3의 트라우마를 낳게 했고, 그 고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렇기에 또다시 공권력을 동원해서 사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밀어붙이기를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치권과 제주도정 및 도의회,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평화적 해결을 외쳤음에도 정부가 힘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강정 해군기지의 당위성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명쾌하게 와 닿지 않는다. 그동안 해군기지를 건설해야겠다는 정부논리만 있었을 뿐 그에 대한 차분한 설득이나 이해를 시키지는 못했다. 제주도에 군사기지가 필요한지, 미래지향적으로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 등 차분히 따져볼 여지가 별로 없었다. 다른 국책사업도 아닌 군사기지 문제는 더더욱 신중한 추진절차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한 제주섬은 늘 군사기지로 인한 긴장과 불안이 끊이질 않았다. 기원 무렵부터 제주도는 중국과 한반도 일본을 잇는 해상교통로상의 요충지로 문화의 교차로 역할을 했다. 주변국들은 그런 제주도를 군사적으로 이용했다.

동아시아 패권국으로 세계를 주름잡았던 몽골이 남송과 일본정벌을 위한 병참기지로 삼았고, 1937년 중일전쟁 당시에는 일제가 모슬포에 군사비행장을 건설 중국대륙 공격을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했다. 1941년 발발한 태평양전쟁 당시에는 일제에 의해 섬 전체가 요새화됐다. 그로 인한 고통은 온전히 제주도민이 감내해야만 했던 몫이었다. 장개석 정부는 1949년 중국내전 말기 해·공군기지 건설을 추진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제주도 군사기지는 결국 주변국과 민감하게 부딪치는 국제적 사안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군사적 목적보다도 경제적 측면과 해상교통로 확보를 위해 해군기지 건설의 불가피성을 내세우더라도 G2로 떠오른 미·중간의 갈등에 정부의 의지가 얼마나 먹힐지는 의문이다. G2간 군사적 갈등이나 동아시아의 긴장이 고조되면 제주도 군사기지는 정부 의지와는 무관하게 화약고로 변질될 우려가 큰 것이 현실이다.

제주도민들이 평화의 섬을 추구한 것도 이 같은 역사적 아픔과 비극이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는 절박함이 깔려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밀어붙이기를 계속한다면 4·3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온 제주도민들은 또 다시 긴 침묵과 고통을 강요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윤형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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