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 괌에서 제주를 보다
입력 : 2012. 04. 25(수) 00:00
서태평양상 미군의 전략거점인 괌은 슬픈 열대의 섬이다. 괌은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정치·경제·군사적 보호아래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괌의 역사의 궤적을 쫓다보면 어느새 한반도와 제주도의 역사와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괌은 예전부터 아시아와 아메리카대륙을 연결하는 요지였다.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괌은 오래전부터 식민지배와 전쟁의 역사를 반복적으로 경험해야 했다. 16세기 스페인이 이 섬의 원주민인 차모르인을 굴복시켜 식민지로 삼은 이래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을 거쳐 1898년부터 괌을 지배한다.

1941년 12월 일어난 태평양전쟁은 이 섬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은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마자 3일 만에 괌을 점령해버린다. 미국이 괌을 탈환한 것은 1944년 7월이다. 일제는 3년 반 정도 지배하는 동안 괌의 이름마저 오오미야지마(대궁도)로 바꿔버렸다. 미군과의 일전에 대비해 제주도의 3분의 1정도 크기인 괌은 섬 전체가 전쟁요새로 변했다.

오늘날 최신식 리조트가 즐비한 해안가에서부터 내륙 깊숙한 곳까지 전쟁의 상흔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제주도 전체가 태평양전쟁시기 거대한 요새로 만들어진 것처럼 괌 또한 마찬가지다. 이후 괌은 서태평양에 있어서 미군의 중요한 전략기지가 된다. 유명한 괌의 앤더슨공군기지를 비롯 해군기지 등은 일본 오키나와기지와 함께 태평양주둔 미군전력의 핵심을 이룬다.

괌에서 일어난 태평양전쟁의 비극은 한반도와도 관련 있다. 일제에 의해 제주도를 포함 한반도에서 강제 징용된 한국인들이 군사시설 구축에 동원돼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중 상당수는 전쟁의 와중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그 흔적은 섬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렇지만 괌의 징용실태는 아직껏 규명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괌의 아픈 역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진행형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해 10만 명 이상 여행하고, 원정 출산을 위해 산모들이 자주 찾는 괌의 역사는 이처럼 우리와 무관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전쟁유산을 바라보고 미래자산으로 인식하는 마인드는 제주도와는 다르다. 괌의 전쟁유산은 역사교훈현장으로 수려한 경관과 함께 다양한 볼거리를 더해주고 있다. 주요 전쟁유산은 미국정부에 의해 태평양전쟁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역사공원에는 해설사가 상주하면서 방문객들을 안내한다. 괌 자치정부도 주요 지하진지는 문화재로 지정해놓고 있다. 거기에는 한국인들도 동원된 지하 갱도진지가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제주도의 경우도 태평양전쟁 시기 유산 13곳이 정부에 의해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상태다. 하지만 대부분은 등록만 해놓고 관리 활용방안 마련은 뒷전이어서 지속적으로 훼손 함몰위험에 노출돼 있다. 최근 가마오름동굴진지가 경영난으로 매각설이 나돌았던 것처럼 등록문화재 관리 실태에 대한 점검도 필요한 시점이다.

어두운 역사라고 해서 등한시 한다면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난 아픈 역사에서 직시해야 할 점이 아닌가 한다. <이윤형 사회교육부장>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091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ϴ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