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권력의 가면, 진실의 초상
입력 : 2025. 11. 05(수) 01:00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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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영화 '굿뉴스'에서)
1970년 '요도호 납치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굿뉴스'는 진실과 거짓, 권력과 언론, 그리고 사회 시스템을 향한 날카로운 질문으로 관객을 이끈다. 일본 적군파가 납치한 여객기가 북한으로 향하려는 위기 속에서, 한국 정부는 김포공항을 평양공항으로 위장해 착륙시키는 전례 없는 연극을 펼친다. 관제사의 지시, 군인의 복장, 환영 현수막까지 모든 것이 '진실처럼 보이는' 장치로 진실을 가장한다. 영화는 이 들킬 듯 말 듯한 긴장감 속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풀어내면서도, 관객에게 씁쓸한 실소를 유도하며 현실의 이면을 조명한다.
진실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진실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 감독은 그 불확실성의 틈새에서 인간의 욕망과 체제의 부조리를 교차시키며, 현실의 민낯을 드러낸다. 영화는 바로 그 교차점-믿음과 조작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웃음을 통해 진실의 초상을 그려낸다. 권력은 공포를 통치의 언어로 번역하고, 언론은 그 언어를 '굿뉴스'라고 포장한다. 극 중 '아무개'의 말처럼, 진실의 요건은 '일어난 사실'에 '약간의 창의력', 그리고 '믿고자 하는 의지'가 더해져 완성된다.
영화가 사건의 재현으로만 다가오지 않았던 이유는, 35년 전 펼쳐졌던 그 연극의 메커니즘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정치의 무대와 언론의 언어는 지금도 유사한 방식으로 진실을 구성하고, 그 진실은 논리보다는 정서에 기대어 유통된다. 이념의 분열이 깊어진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진실은 각 진영의 언어로 재구성되고, 반복 소비된다.
정권 교체는 '빛의 혁명'이라 불렸지만, 정작 빛이 드러낸 것은 과거의 무능과 퇴행이었다. 권력의 최상층에서 반복되는 무책임과 공허함은 영화 속 블랙코미디의 장면처럼 낯설지 않다. 웃음은 멈추지 않지만, 그 웃음이 가리키는 것은 희극이 아니라 깊은 허무였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 역시 그 허무의 자리에 놓여있다. 우리가 '역사'라 믿고 있는 것들, 기억 속에 굳어진 '사건들'은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 편집된 '굿뉴스'였는지도 모른다. 혹은 '굿뉴스'란, 특정 이해관계 속에서 기획된 허구의 축제였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화려하게 남은 주인공의 이름은 기억의 중심에 자리하지만, 수많은 '아무개'들은 익명 속에 흩어진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그 '아무개'에게 '고명(高名)'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며 잊힌 존재를 복원하고 새로운 윤리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가볍게 웃으며 본 블랙코미디는, 진실과 권력의 관계를 되묻는 철학적 우화로 남았다. 수많은 의구심은 결국 하나의 물음으로 수렴된다.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제주의 겨울이 다시 찾아오고, 한라산 깊숙이 진실이 묻힌 지도 77년이 흘렀다. 그 시간이 유독 아득한, 가을이다. <김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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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요도호 납치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굿뉴스'는 진실과 거짓, 권력과 언론, 그리고 사회 시스템을 향한 날카로운 질문으로 관객을 이끈다. 일본 적군파가 납치한 여객기가 북한으로 향하려는 위기 속에서, 한국 정부는 김포공항을 평양공항으로 위장해 착륙시키는 전례 없는 연극을 펼친다. 관제사의 지시, 군인의 복장, 환영 현수막까지 모든 것이 '진실처럼 보이는' 장치로 진실을 가장한다. 영화는 이 들킬 듯 말 듯한 긴장감 속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풀어내면서도, 관객에게 씁쓸한 실소를 유도하며 현실의 이면을 조명한다.
영화가 사건의 재현으로만 다가오지 않았던 이유는, 35년 전 펼쳐졌던 그 연극의 메커니즘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정치의 무대와 언론의 언어는 지금도 유사한 방식으로 진실을 구성하고, 그 진실은 논리보다는 정서에 기대어 유통된다. 이념의 분열이 깊어진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진실은 각 진영의 언어로 재구성되고, 반복 소비된다.
정권 교체는 '빛의 혁명'이라 불렸지만, 정작 빛이 드러낸 것은 과거의 무능과 퇴행이었다. 권력의 최상층에서 반복되는 무책임과 공허함은 영화 속 블랙코미디의 장면처럼 낯설지 않다. 웃음은 멈추지 않지만, 그 웃음이 가리키는 것은 희극이 아니라 깊은 허무였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 역시 그 허무의 자리에 놓여있다. 우리가 '역사'라 믿고 있는 것들, 기억 속에 굳어진 '사건들'은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 편집된 '굿뉴스'였는지도 모른다. 혹은 '굿뉴스'란, 특정 이해관계 속에서 기획된 허구의 축제였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화려하게 남은 주인공의 이름은 기억의 중심에 자리하지만, 수많은 '아무개'들은 익명 속에 흩어진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그 '아무개'에게 '고명(高名)'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며 잊힌 존재를 복원하고 새로운 윤리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가볍게 웃으며 본 블랙코미디는, 진실과 권력의 관계를 되묻는 철학적 우화로 남았다. 수많은 의구심은 결국 하나의 물음으로 수렴된다.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제주의 겨울이 다시 찾아오고, 한라산 깊숙이 진실이 묻힌 지도 77년이 흘렀다. 그 시간이 유독 아득한, 가을이다. <김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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